매일신문

[세풍] '쉬운 해고'라니

미국 대선전에서 막말 퍼레이드를 펼치면서도 공화당 대선후보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트레이드 마크는 '유 아 파이어드'(You are fired' 너 해고야)다.

미국 NBC의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수습사원)에 출연한 부동산 재벌 트럼프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거침없이 '유 아 파이어드'를 날려댄다. 이 말을 듣고 두말없이 짐을 챙겨 돌아서던 참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쇼는 부동산 재벌회사인 트럼프사에 채용되기 위해 16명의 출연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당신 해고입니다'도 아니고 '너 해고야'를 남발한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배경엔 '쉬운 해고'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미국인의 정서가 깔려 있다. 미국은 저성과자나 직무 능력이 떨어지는 근무자를 퇴직 처리할 수 있는 해고가 보편화되어 있다.

해고를 입에 달고 산 후보가 미국 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인 것도, '쉬운 해고'의 천국인 미국이 전 세계적 경기 부진 속에 '나 홀로 승승장구'하는 모습도 아이러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노조를 그리 몰랑하게 볼 일은 아니다.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 자동차 노조는 강성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강성은 GM과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 본사가 위치한 디트로이트시의 명운을 갈랐다. 툭하면 파업인 노조와 마찰하던 자동차 관련 회사들이 해외나 다른 도시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공장이 사라지니 실업률은 치솟았고, 한 집 건너 한 집씩 빈집이 생겨났다. 한때 200만 명을 넘보던 디트로이트시의 인구는 70만 명으로 줄었다. 한 세기를 넘겨 번성하던 도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잠시였다. 강성 노조와 이에 타협한 무능한 경영진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도시를 지옥에 떨어뜨린 것이 노조였다면 건져낸 것 역시 노조였다. 나락을 경험한 노조는 회사와 타협했다. 관건은 노동 유연성이었다. 기존 근로자에 비해 임금이 절반에 불과한 신규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는 '이중 임금제' 도입에 노조가 찬성했다. 회사가 파견'시간제 등 비정규직 근로자를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안도 받아들였다. 강성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것이다. 디트로이트시는 다시 부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11년 775만 대던 자동차 생산량이 2014년 1천23만 대로 다시 늘었다. 한때 27%까지 치솟았던 지역 실업률은 5.1%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양대 지침을 발표하자 민주노총이 덜컥 무기한 총파업 돌입을 선언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노총의 '쉬운 해고'란 주장에 수긍할 수도 없다. 민주노총의 '쉬운 해고' 주장은 뜯어보면 CEO의 말 한마디에 짐을 싸는 미국식 '쉬운 해고'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정한 일반해고 요건은 취업규칙, 단체협약상 해고사유를 명시하게 돼 있다. 평가 대상과 기준, 방법도 밝혀야 한다. 평가 결과 역시 공개한다. 여기에다 저평가자의 경우라도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적합한 업무로 전환 배치하는 기회도 준다. 저평가자의 해고까지는 3중 4중의 장치가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최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OECD 34개국 중 2위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이라면 다르다. 25위로 뚝 떨어진다. 노동시간 대비 효율성은 후진적이란 뜻이다. 최근 스위스 최대은행 UBS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앞으로 전개될 4차 산업혁명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순위가 25위였다. 그러나 노동 유연성 부문에서는 139개 국가 중 83위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미래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정부는 물론 노조가 주목해야 할 자료다.

세계 경제의 거센 흐름의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공멸은 시간문제다. 정부의 발표에 파업부터 하고 나선 민주노총이 지옥을 경험하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는 바람직할지 모르나 국가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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