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대구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추운 겨울 날씨다.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연탄이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어서 겨울철이면 연탄불을 피웠다. 어머니는 새벽에 연탄불을 갈기 위해 밤잠을 설치시곤 했다. 아주 가끔 연탄을 직접 갈기도 했는데, 다 탄 연탄을 떼어내고 불씨가 남은 연탄을 넣은 후 새 연탄으로 구멍을 맞추는 일이 참 어렵고 눈물, 콧물 빼는 고단한 작업이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연탄가스 중독이 많았던지, 아침에 TV를 틀면 간밤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몇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석탄산업도 활황이어서 탄광에서 많은 사람이 일을 했고, 의사들도 많이 파견을 나갔다. 대우가 무척 좋아 탄광촌으로 파견 가려는 전공의들의 경쟁이 뜨거웠다고 한다.
이제는 주변에서 연탄 볼 일이 거의 사라졌다. 연탄의 주재료인 무연탄 사용량이 가장 높았던 때가 1986년이라니 벌써 30년 전의 얘기이다. 당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50%를 차지했던 무연탄 소비량은 지난 2013년 기준으로 2.3%로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늘 관심을 가져야 할 소외계층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연탄 사용 가구 수가 16만8천 곳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전체 가구의 0.84%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든 소외가구이고,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많다.
연탄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연탄 기부와 배달 봉사가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달동네의 좁은 길과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누비며 한겨울 이웃의 방을 덥혀 줄 소중한 연탄을 꽁꽁 언 손으로 한 장 한 장 나른다. 인간으로 이뤄진 '사랑의 컨베이어 벨트'.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올겨울에는 경기 침체 영향으로 연탄 후원과 봉사자가 많이 줄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중략)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중략)'
안도현 시인의 또 다른 시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로 시작한다. 시인의 질책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남은 재마저 산산이 으깨어 누군가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들어 주는 연탄처럼, 또는 그 연탄을 나르는 따뜻한 손길의 온기만큼이라도 주변을 돌아볼 수 있으면 한다. 겨울 한파가 매서울수록 연탄의 온기가, 우리의 사랑이 절실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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