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개혁'과 '개악'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 개혁' 과제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 개혁 관련 5개 입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중 '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을 두고 야권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기간제법 개정안은 기간제 근로자 사용제한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대상 노동자의 나이를 35~54세로 제한하는 것이다. 파견법 개정안은 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생산 공정·파견금지 업무를 제외하고 파견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주조, 금형, 용접 등 '뿌리 산업'의 심각한 인력난을 덜게 된다는 효과가 있긴 하다.

노동 관련 입법은 고용 유연성을 높여 기업 활력을 높이고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과 노동계는 이를 '노동 개악'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기간제 사용제한 기간을 늘리면 정규직 전환율이 다소 높아질 수 있겠지만, 기업들이 악용해 비정규직 기간만 늘어나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파견 허용 범위를 확대하면 제조업 전반에서 파견 근로자가 늘어나 고용 조건이 더 후퇴하게 돼 일자리의 질이 나빠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업들이 환영하는 반면 노동계가 반대하는 것은 노동 관련 입법이 기업 입장에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가 17년 만의 대타협을 이뤘다고 했을 때도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등 핵심 쟁점에서 '추가 논의'라는 단서를 단 미봉책이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가 국회에 입법을 압박하자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저 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노사관계 양대 지침 최종안을 발표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기업에 해고의 칼자루를 하나 더 쥐여줘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다.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두더라도 인력 수요가 달라지는 환경에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데 그쳐야 한다. 비정규직이 고용 안정성은 떨어지더라도 임금 차별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너무나 동떨어져 비정규직 근로자가 넘쳐나는 국내 현실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더 양산하려는 것은 가계 경제가 심각한 사정을 외면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유례없이 민간의 경제 살리기 입법 서명운동에 참여한 행동은 부적절하며 공정하지도 않다. '개악'일 수도 있는 노동 과제를 '개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교언영색'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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