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정의화 국회의장의 고민

19대 국회에 대해 가장 많은 걱정을, 가장 오래 해 온 사람은 아마도 정의화 국회의장일 것이다. 청와대나 여야 정당에서 아무리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자나 깨나 국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입법부의 수장인 정 의장보다 더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국회 파행의 화근(禍根)이라는 국회선진화법이 떡하니 버티고 선 19대 국회를 이만큼이나마 끌고 온 것만으로도 정 의장의 공이 제일 크다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19대 국회의 성적이 최악이었다는 평가에서도 정 의장은 자유롭지 않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6일 2012년 18대 국회 말 국회선진화법 통과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새누리당의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권력자의 눈치만 보다가 권력자의 손을 따라 우르르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회 걱정보다는 권력 눈치 보기에 바빴던 '생각 없는' 국회의원들 속에서 국회를 이만큼이라도 굴러가게 만든 것이 정 의장의 업적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정 의장은 지금 무당파다. 정 의장의 '친정'은 새누리당이다. 당파에 휘둘리지 말고 객관적'중립적으로 국회를 운영하라는 취지로 2002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정 의장도 의장에 당선되면서부터는 새누리당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이 됐다. 또 정 의장은 새누리당에서 비주류였다. 새누리당에서 경선을 통해 국회의장 후보가 되기까지 주류인 친박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친이(親李)는 아니라도 적어도 친박(親朴)은 아니었다.

그래선지 새누리당 내 몇몇 인사들은 정 의장의 마음이 변했고, 사심(私心) 정도가 아니라 사심(邪心)이 가득하다며 줄기차게 비판과 성토를 쏟아냈다. 5선의 국회 수장을 향해 앞뒤 분간을 하기에도 바쁜 초선들까지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들처럼 달려들어 흠집 내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생사여탈권 즉 공천권을 쥐락펴락하는 청와대의 눈치만 본 때문이다. 초선들뿐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정 의장 성토가 새누리당 공식회의 석상의 단골 메뉴가 됐다.

그런 정 의장이 25일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후배 의원들의 불출마 요구 등쌀에 쓰러진 것이 아니다. 5선에서 6선으로 선수(選數)를 늘리려는 욕심이 좌절된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정 의장은 불출마를 이야기하면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중재안도 함께 냈다. 국회 마비를 해소할 사실상의 국회선진화법 무력화안이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위한 중재안에 무게감을 더했다.

의안 신속처리 제도 요건을 상임위 재적 60%에서 과반수로 완화시키고, 신속안건 심사기간도 330일에서 75일로 단축하자는 내용이다. 숫자만 믿고 밀어붙이려는 다수당의 일방통행도 안 되지만, 다수결 원칙도 무시하는 소수당의 어거지 '땡깡'도 안 통한다는 중도안이다. 과반수만 넘으면 속전속결 졸속 입법도 안 되지만, 1년 가까이 되는 과도한 숙려기간에 현안이 녹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타협안이기도 하다.

정 의장의 중재안은 그만큼 현실적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직권상정 요구를 일축하는 정 의장을 가리켜 '의장독재'라고 성토한다. 하지만 새누리당 사람들도 정 의장을 욕하는 것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다수당의 독재를 막겠다는 야당의 주장은 여당 되기를 포기한 채 천년만년 알량한 기득권만 즐기겠다는 패배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여당과 저런 야당을 믿고 국회를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는 게 정 의장의 중재안이다.

필자는 이 중재안이 지방분권, 지역패권주의 타파, 승자독식 양당제 혁파 등 정치개혁 정신을 담은 개헌론을 줄기차게 주창해 온 정 의장의 충정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공은 이제 여야 정당에 넘어가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제대로 답을 내달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