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자동사도 길일 수가 있다 (공지영의 '길')②

삶은 언제나 타동사는 아닐 게다. 삶이든 사랑이든 변혁이든 한 번 시작된 것은 제 길을 홀로 가고 싶어하니까.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주인공은 아들과 소통할 수 있었을 게다. 아내의 등을 쓸어내리는 주인공의 마음이 소름 끼치도록 따뜻하게 내 가슴으로 달려왔다. 그래. 삶이든, 사랑이든, 변혁이든 한 번 시작된 것은 가끔 우리를 버려두고 제 길을 홀로 가고 싶어 한다. 왜? 그것도 길이니까. 공지영의 '길' 중에서

30년 만에 떠난 여행, 아내는 불쑥, 그러나 단호하게 이혼을 얘기합니다. 아들이 죽는 날 영화를 촬영하던 장소. 거기에서 보았던 염소를 만나기 위해, 아니 죽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주인공이 자주 택했던 보길도. 가파른 절벽길에서 그는 아들의 형상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절벽길에서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이혼을 하자는 아내의 마음을 만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그러한 가파른 벼랑을 한 번쯤은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삶과 사랑과 변혁이 모두 타동사라는 교훈. 자기를 부서뜨리는 아픔과 예측 못 한 미끄러짐을 동반하는 그러한 꿈들. 시간의 전지전능함. 시간은 폭풍도, 아픔도, 상처도 가져간다는 사실을. 하지만 주인공은 아내와의 여행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묶었던 생각과는 다른 마음을 향해 자신의 시선을 돌립니다.

아내는 수학 선생님입니다. 당연히 완벽한 삼각형, 평행 사변형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러한 것이 수학책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을 뿐. "수학에는 틀림없는 답이 있잖아요"라고 선을 볼 때 아내는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좋아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삶을 살아가는 영화촬영감독 주인공과 정답만을 믿는 아내는 점점 멀어집니다. 신기한 건 주어진 틀 속에서만 살아왔을 거라고 믿는 아내는 의외로 주인공이 모르는 많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지요. 남도의 산, 바다, 길모퉁이 하나까지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단지 주인공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몰랐기 때문에 아내는 엄정한 타동사로만 살아왔다고 착각한 셈이지요.

자동사로 살아가려는 아들과는 끝내 불화했지만 자동사로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던 아내와는 그냥 시간을 견뎌왔던 것이지요. 모든 이들의 삶이 들여다보면 타동사는 아닌 것이지요. 절벽에서 미끄러진 주인공은 구사일생으로 다시 절벽을 올라옵니다. 그때 이혼을 말했던 아내가 불쑥 던지는 말, '당신이 어떻게 되었으면 따라 죽으려고 했어요'라는 말. 주인공은 흐느끼는 아내의 등을 쓸어줍니다.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삶이 언제나 타동사는 아니라는 것. 모두가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 오히려 자동사로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길일 수도 있다는 것. 어디선가 염소가 울고, 그렇게 먼 바다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풍경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1990년대, 2000년대에 나온 작품들을 읽다 보면 끊임없이 끌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마도 내 과거의 이야기였고, 내 현재를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의미한 관계 속에서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상처가 없습니다. 상처는 치열한 삶의 결과입니다. 상처가 많다는 건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우연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파졌습니다. 아직은 내 가슴이 뜨겁구나 하는 생각, 그래도 이제는 이런 노래를 들어도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 이미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 현재는 과거가 남기는 필연적인 결론이라는 생각, 갖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새로 발간되는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이미 읽었던 책, 내 가슴을 때렸던 지난 책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느낍니다. 읽을 책의 목록보다는 읽은 책의 목록이 더 소중할 수도 있으니까요. '길', 한 번 읽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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