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새論새評] 게임의 정석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 카이스트 겸직교수

'안철수 신드롬' 사라져버린 국민의당

더민주와 호남서 경쟁은 제로섬 게임

수도권서 분열의 대가는 처참할 것

누가 이기든 대선의 승자 될 수 없어

그 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을 흔히 '제로섬' 게임이라 부른다. 그 합이 플러스가 되는 게임을 '포지티브섬' 게임, 마이너스가 되는 게임을 '네거티브섬' 게임이라 부른다.

느닷없이 이 얘기를 하는 것은 4·13 총선을 앞두고 둘로 갈라진 야권의 상황 때문이다. 듣자 하니 둘로 갈라진 야권의 한쪽에서는 '범야권전략협의체'를, 다른 쪽에서는 '호남 신당'과의 통합을 각각 추진하고 있단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관계이리라. 하나였던 제1야당이 둘로 나뉘어 치르는 총선에선 과연 어떤 결과가 얻어질 것인가? 안철수 의원은 구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는 희망이 안 보여 "정권교체를 위해" 탈당을 한다고 밝혔다. 이 말을 있는 그대로 순진하게 믿어준다면, 그가 자신의 탈당 정치를 일종의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그럴 수 있었다. 그가 새정치에 합류하지 않고 제 길을 갔다면, 지금쯤 기존 야권 지지층 위에 더민주가 커버하지 못하는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올 유일한 후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후보단일화에서 이기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제1야당의 후보가 승리의 확신을 주지 못할 경우, 야권의 표심이 그에게 쏠렸을 것이다. 명분도 있다. 그는 이미 한 번 양보를 한 적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새정치에 합류함으로써 그는 자신만의 '플러스 알파' 효과를 그냥 날려 버렸다. 당에 들어감으로써 그 자신이 기성정당의 한계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장점은 오직 그가 기성정당의 밖에 머물 때에만 존재한다. 이번에 그가 당을 나가기로 결심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탈당을 하자마자 바닥으로 내려갔던 그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철수 신드롬'은 오래전에 사라져 버리고, 현재 그에 대한 지지는 거의 호남에서 나오고 있다. 탈당 직후엔 새누리당 지지층을 일부 흡수하는가 싶더니, 그 효과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그는 호남 신당세력과 손을 잡았고, 이렇게 자신을 지역에 가두자, 그만이 낼 수 있었던 플러스알파의 효과도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게임의 성격을 오해한 것일까? 사실 호남지역에서 그가 더민주와 벌이는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다. 즉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처절한 싸움이다.

그래도 이 게임은 행복한 게임이다. 적어도 이 게임에선 어느 당이 이기든 두 당이 얻어낼 의석의 합은 분열되지 않았을 때와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벌어질 게임은 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호남 밖에서 두 당의 경쟁은 어쩔 수 없이 네거티브섬 게임이 된다. 특히 몇백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수도권에서 분열의 대가는 처참할 것이다.

단일화 자체도 어렵고, 설사 단일화가 되어도 문제는 남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제로섬 게임에 휘말린 두 당의 지지자들은 단일화 이후에도 감정적 앙금이 남아 승자가 제 당 후보가 아닐 경우 차라리 투표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뻘짓'에서 뭔가를 배운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두 당은 교훈을 배울 틈도 없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싸움에 돌입할 것이다.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라, 자기와 조금 다른 아군을 차라리 적군보다 더 격렬히 증오한다.

두 당의 분열로 지금 야권 지지자들은 이미 이 괴상한 심리의 덫에 빠졌다. 누가 이기든, 이 싸움의 승자는 절대로 대선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때쯤 그는 이미 (야권 내에) 열렬한 지지층과 더불어 그에 맞먹는 규모의 격렬한 비토층을 거느리고 있을 테니까.

대체 이 게임을 왜 시작했을까? 자기가 벌일 게임의 성격을 오해한 것일까? 아니면 그 자신이 (지난 대선과 당 대표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지금 두 당의 지지자들이 빠진 그 괴상한 심리의 덫에 미리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 때로 이렇게 수학적으로 답이 안 나오는 일도 한다. 그게 기계와 다른 인간의 매력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