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긴급진단 가정폭력 대책없나] <하>범죄행위 인식해야

"스스로 해결" 버티다 극단상황

27일 오후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대구 해밀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해밀센터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 등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27일 오후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대구 해밀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해밀센터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 등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수십 년간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려온 50대 초반 여성 A씨. 의처증은 상습 폭력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착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남편이기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남편이 A씨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둔기로 얼굴을 때리는 등 심각한 폭행을 했고, 목을 졸라 실신까지 시켰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A씨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남편은 구속됐다. 가정폭력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아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A씨는 "좀 더 빨리 외부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아들이나 나도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가정폭력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가정폭력의 종결은 죽거나 죽이거나'라는 말이 나올 만큼 주로 극단적인 상황까지 갔을 때 외부로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가족 내부에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피해자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지원기관이나 경찰을 찾는 데 소극적이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폭력은 발생률이 45.5%에 이를 정도로 빈번하지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3%, 가정폭력상담소 등을 찾은 경우는 0.1%에 불과했다.

대구 1366센터는 "피해자가 최초 폭력 발생 이후 신고하는 데까지 평균 11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돼야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인데 이럴 때 정상 가정으로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솜방망이' 같은 처벌 수준도 피해자들이 쉽사리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대부분 훈방 처리되고, 격리나 퇴거명령 등의 임시조치를 받는다. 임시조치를 위반했을 때도 과태료가 부과되는 정도라 재발 우려가 높다. 결국 앞선 A씨의 사례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야만 구속 등 강력한 처벌이 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단순 폭행의 경우 가해자 처분을 피해자의 진술이나 처벌의사에 온전히 의존하는 실정이다. 재발방지를 위해 강력히 대응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예방 교육이 필수적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격리에도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주로 피해자들이 보호시설에서 거주하는 방법으로 격리가 이뤄지지만 피해자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가해자가 임시 주거지에서 거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내에서는 경찰이 가해자에게 피해자 접근금지명령 처분을 내리더라도 가해자가 마땅히 기거할 곳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

독일의 경우 경찰로부터 퇴거명령을 받은 가해자에게 임시 주거지를 마련해주는 방법으로 격리하고 있다. 1366센터 관계자는 "격리가 필요한 경우 피해자를 쉼터로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쉼터는 아동의 학교와 멀고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한계가 있고 시설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잠재적 가해자나 피해자들이 가정폭력도 범죄라는 인식을 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공익광고나 캠페인 등을 통한 지속적 홍보와 함께 가정폭력 예방교육도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가정폭력을 포함한 폭력예방교육이 의무화됐지만, 대상기관이 공공기관으로 한정돼 있다. 일반 남성이 대상이 되는 군대나 대학에서도 예방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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