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수성못 첫사랑

'바람에 실려왔나 카페에서 만난 그사람/…/두근 두근 어쩌면 좋아 나의 첫사랑/…/사랑의 자물쇠로 맹세를 하고/수성못 연리지에 다짐을 했죠/천년의 약속 영원한 사랑.'('수성못 첫사랑' 가사)

옛날 대구에는 영선지와 배자못, 감삼못을 비롯해 곳곳에 연못(저수지)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주택과 아파트 건립 등 개발 바람을 타고 하나 둘 메워지면서 대구 도심에는 일부만 남았다. 지금 시민휴식처이자 대구를 대표하는 저수지는 성당못과 수성못 정도다. 살아남은 성당못은 1990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서고 시민휴식처로 확실하게 재탄생하게 됐다.

수성못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1925년 일본인이 축조해 수성들에 물을 대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수성들의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저수지 기능을 잃고 한때 매립 위기였다. 택지로 쓰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1990년 유원지로 지정돼 지금에 이르러 대구 최고의 명소가 됐다. 그 뒤에는 구청의 생태복원 사업과 이야깃거리 제공을 위한 다양한 스토리텔링 작업 덕도 있다.

민족시인 '이상화 기리기'와 '수성못 찬가'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일제하 수성들을 배경으로 이상화 시인이 지은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되새겨 종전 수성못 주변 '상단공원'을 '상화공원'으로 바꿨다. 상화공원에서 '상화문학제'를 열기도 했다. 수성못과 사라져 잊혀진 옛날 수성들을 이상화 시인을 기리는 무대로 명소화한 셈이다.

'수성못 찬가'는 '수성못 첫사랑'이란 노랫말로 탄생했다. 이진훈 구청장이 수성못 주변에 있는 '사랑의 징표'인 연리지(連理枝) 나무와 산책로 주변에 걸린 크고 작은 '사랑의 자물쇠'를 보고 지은 가사다. 신웅 작곡가의 도움을 받아 수성구 홍보대사인 신유 가수의 노래로 음반 등록도 마쳤다. 노래는 노래방 등록까지 되면서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바로 저작권료 1차 수입 20만원이었다. 수입은 지난해 연말 수성장학재단에 전달됐다.

과거 수성못 옆에는 '파잠'이란 동네가 있었다. 오늘의 파동이다. 조선조 대구에서 살기좋은 곳으로 '일파잠(一巴岑) 이무태(二無怠)'로 불리며 파잠은 오늘날 북구 무태동과 함께 어깨를 겨뤘다. 또한 파잠과 옛 황금동 등 수성못 주변은 조선조 대구 유림의 선구자 전경창과 그의 제자로 임란 의병장을 지냈고 대구 유림을 이끈 손처눌 등 여러 학자를 낳은 곳이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면 수성못의 변신과 진화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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