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골프인생 대박사건] 이태규 프로 골퍼

입문 20년 만에…생애 첫 우승 '10번 홀의 선물'

이태규 프로가 2009년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의 모습.
이태규 프로가 2009년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의 모습.

나의 생애 첫 우승은 2009년(당시 36세)의 개막전인 KEB인비테이셔널대회(중국 광둥성 둥관 힐뷰골프장). 마지막 라운드의 날을 복기하며 골프인생 대박사건으로 적고자 한다. 이 대회를 시작할 때, 대부분의 전문가와 언론은 디펜딩 챔피언인 배상문과 허인회, 강경남, 김대섭 등을 우승 후보로 지목했지만 '챔피언'이라는 행운의 여신은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1. 첫 홀의 보기가 오히려 약이 됐다. 첫 홀을 보기로 시작한 나는 같은 조(박도규'허원경 프로)의 선수와 말없이 눈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다음 홀로 향했다. 이후 2'3'4번 홀을 3연속 버디로 첫 홀의 보기를 만회했다. 5번 홀 파, 6번 홀 버디, 7번 홀 파 이후 또다시 10번 홀까지 3연속 버디를 기록했다. 뭔가 행운이 뒤따르는 라운딩이 이어졌다. 우승 경험도 없을뿐더러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리처드 무어(호주)에 7타 뒤진 공동 10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출발했지만 최종 우승은 내 차지였다. 리처드 무어는 마지막 날 라운드에서 초반부터 더블보기가 3개씩이나 나오면서 선두를 내줬다.

#2. 첫 우승을 향한 욕심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8~10번 홀까지 다시 3연속 버디를 했지만 사실은 전반 9홀을 보기 1개, 버디 6개로 끝낸 후 평소 친하게 지내던 경기위원(김광태 프로)에게 공동선두라는 말을 들은 직후 10번 홀부터 많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 심리적 압박 속에 10번 홀의 버디는 내 인생의 모든 트라우마를 던져버렸다.

중학교까지 필드하키를 하다가 17세(1988년)에 골프 입문을 했기에 요즘의 프로 지망생과는 달리 연습장의 허드렛일을 하는 연습생 신세였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골프 입문 5년 차에 세미프로가 됐지만 바로 입대했고, 제대 후 레슨을 하며 투어프로의 도전은 11번의 실패 후 200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프로 테스트를 2등으로 통과했고, 2003년 코리안투어의 시드를 얻었다. 최종 우승 후 퍼터 입스(심리적 신경장애)로 인해 어렵게 따냈던 시드를 잃고 5년 동안 2부 투어만 다녀야 하는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

#3. 첫 우승은 20년 마음의 병을 털어줬다. 골프에 입문한 지 20년,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으로 대회 때마다 심리적 압박이 있을 때 실수를 많이 하는 고질병이 있었다. 4라운딩 10번 홀에서의 버디는 내 골프 인생의 쓰디쓴 아픔들을 모두 치유해주며, 과거 20년의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게 했다. 10번 홀의 버디는 단독 선두로 올라서며 평정심을 가지게 한 큰 힘이 되었다. 다시 마음을 다지고 11, 12번 홀에서 파를 했다. 13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14번 홀 다시 버디로 만회하며 마지막 4라운드는 대회 베스트 스코어(66타)로 1타 차 선두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을 통해 얻은 것은 2년간의 시드와 8천만원의 상금이었지만, 남들처럼 여행을 간다거나 거창하게 쓰지도 못했다. 하지만 투어생활을 하면서 진 빚과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첫 우승까지 참고 기다려준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지금도 눈물 나도록 고마울 뿐이다.

※'내 골프인생 대박사건' 새 시리즈에 여러분의 사연을 담아 드립니다. 문의=골프담당 권성훈 기자 053)251-1665, 이메일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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