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로봇, 소리

잃어버린 딸 찾기, 마지막 희망은 '로봇'

10년간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매는 중년의 아버지와 서해안에 떨어진 인공위성 로봇이 동행하는 로드무비다. SF적 요소를 리얼리즘 드라마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위험성이 크다. '우뢰매'나 '로보트 태권 V' 같은 아동물이 아니라면, '예스터데이'(2002), '7광구'(2011)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모방했다가는 현실 드라마와 SF적 요소의 불협화음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로봇, 소리'는 로봇 캐릭터를 가져와 소박하게 SF 장르적으로 접근한다. SF와 멜로드라마의 결합인 '이터널 선샤인'(2004)이나 '그녀'(2013)와 비슷한 전략을 택한다. 드라마는 리얼리즘이며,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지만 SF 요소가 서사 안에서 설득력을 가지도록 전개하는 방식이다. 로봇 캐릭터가 인간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며 주연으로 나선다. 'E.T.'(1982)처럼 미지의 존재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귀엽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어서 응원하게 된다. 인간과 로봇의 대결이 아니라, 악당과 선한 자의 대결 구도를 강조함으로써 캐릭터에의 동일화를 높여 극적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2003년 대구에서 시작한다. 해관(이성민)의 하나뿐인 딸 유주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무런 증거도 단서도 없이 사라진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해관은 생업을 접고 10년 동안 전국을 찾아 헤맨다. 모두가 이제 그만 포기하라며 해관을 말리던 그때,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로봇을 만난다. 해관은 목소리를 통해 대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로봇의 특별한 능력을 감지하고 딸 유주를 찾기 위해 동행에 나선다. 그는 사라진 딸을 찾을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소리'라고 이름 붙인 로봇이 기억해내는 유주의 흔적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게 된다. 한편, 위치 추적과 감청이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을 찾기 위해 미국 나사와 한국의 국정원이 빠르게 감시망을 조여 온다. 한국과 미국 양국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민감해지고, 해관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소리와 필사의 도주를 펼친다.

해관과 소리가 동행하는 가운데 한국이 겪고 있는 집단적 기억이나 외상이 하나둘 펼쳐진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딸의 의견을 세심하게 경청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불찰로 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그 일로 가족은 파국을 맞았다. 우연히 해관의 손에 들어온 로봇을 위장하기 위해 분홍색 옷을 입혀 휠체어에 태우고 다닌다. 인간과 다르게 생긴 로봇이 이동하는데 장애를 느끼는 장면에서는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 심오하게 담긴 메시지는 국가라는 집단이 개인인 시민에게 행하는 상징적 폭력에 대한 것이다. 국가가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도감청을 행하고, 이렇게 해서 확보된 정보를 권력을 위해 이용하며, 집단의 이해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죄의식 없이 제거해버린다.

인공지능 로봇이 계속되는 학습과 소통으로 인해 감정이 자라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는 상상력을 로봇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활용한다. 제자리에서 일탈한 로봇이 해관과의 동행 이후 얻은 자각으로 인해,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좋은 일에 쓰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정보화 시대, 모든 사람이 감시당하는 피곤한 사회를 현재 살고 있지만, 확보된 정보를 세상의 평화를 위해 활용하기를 희망하는 집단적 소망을 영화가 반영한다.

2003년 실제 있었던 한국의 대참사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때 구하지 못한 젊음은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죽음의 트라우마를 은유한다. 극심한 경쟁 구도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 못하는 청춘이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정해진 길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의 갈등은 헬조선의 얼굴이다. 그리하여 해관이 로봇을 잘 보호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

너구리를 본떠 만들었다는, 심은경이 목소리를 입힌 귀엽고 엉뚱한 로봇 캐릭터는 보수적이고 무뚝뚝한 해관과 조화를 이루며 작은 미소를 만들어낸다. 이성민은 TV 드라마 '브레인'과 '미생'에서 찬사를 받았듯이, 일상성 연기와 극적 감정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전형적인 휴먼 드라마 구조이지만 현실 상황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전개는 정서적 설득력을 높이며, 적절하게 삽입되는 유머가 몰입을 돕는다.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과 '오 나의 귀신님'의 곽시양이 유명해지기 전에 작은 역할을 맡았는데,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의미 있는 SF 드라마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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