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국통일·나당전쟁 승리 원천은 김유신 리더십…『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이상훈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국사에 대한 왜곡이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식민사관에 물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고 왜곡한다는 점이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648년 이뤄진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동맹을 '신라가 한반도 문제에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만주의 고구려 영토를 잃어버리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한국은 스스로 존재하기 힘들었고 남의 힘을 빌려 살아야 했다. 항상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큰 나라를 섬기며 국가를 유지해 왔다는 식의 식민사관이 깔려있다. 그런데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 백제, 왜, 당 모두 외세였다. 지금과 같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라통일 이후에 성립됐다는 점을 망각한 부당한 현재적 관점이다.

식민사관 중심의 중국과 일본 학계가 '나당전쟁'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이해가 간다. 중'일학계는 '신라가 당의 심기를 건드려 정벌을 당했고, 토번(티베트)이 성장한 덕분에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런 얼버무림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해서는 곤란하다. 진실은 신라가 압록강을 건너 당을 선제공격했고, 8년간이나 당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국가를 유지했으며, 당이 20만 군대를 동원해 신라를 공격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 당은 강력한 고구려를 멸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약해빠진'(?) 신라는 굴복시키지 못했다. 대체 신라의 그 무엇이 '당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고 삼국통일을 이룩하게 하였을까?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삼국시대는 우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였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만주벌판을 호령했고, 백제는 활발한 대외교역과 높은 생산력을 기반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신라는 열등했다. 군사, 경제, 외교, 교역,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뒤떨어졌다. 이런 신라에 399년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백제 아신왕이 왜'가야와 동맹을 맺고 신라를 침공함으로써 멸망 직전에 처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5만 군사를 보내 경주의 포위를 풀어주었지만,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한 대가는 혹독하고 참담했다. 고구려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276년이 흐른 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까지 물리쳐 한반도의 진정한 승자로 우뚝 서게 된다.

저자는 삼국을 통일하고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라의 힘의 원천으로 먼저 '지도자의 리더십'을 꼽는다. 리더십의 대표적 인물은 바로 김유신이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소정방은 신라군이 합류 날짜를 어겼다며 신라 장수의 목을 베겠다고 나왔다. 김유신은 반발하며 부하를 살리기 위해 (백제공격에 앞서) 당군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대장군(소정방)이 황산에서의 싸움은 보지도 않고 단지 기일이 늦은 것만 죄로 삼으려 하니, 나는 죄 없이 욕됨을 받을 수 없소이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싸운 후에 백제를 쳐부수겠소." 김유신의 기개에 소정방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662년 1월, 소정방이 고구려 평양을 포위공격하다 식량이 떨어졌다. 급박한 위기를 맞은 당군은 연합군 신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적지인 고구려를 가로질러 식량을 전달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병사들이 두려워 국경인 임진강에서 배에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때 김유신이 나섰다. "제군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여기에 왔는가?"라고 말하면서 가장 먼저 배 위에 올랐다. 이를 본 병사들도 김유신을 따라 강을 건너 고구려 땅으로 들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당군에 군량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김유신이라는 지도자의 존재는 신라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김춘추도 백제의 공세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 친밀한 왜에도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고구려와 왜는 신라를 외면했고, 마지막으로 당을 설득해 나당동맹을 이끌어냈다) 이런 지도자 아래 선택과 집중의 전략, 유연하고 탄력적인 군율이 조화를 이루면서 당나라마저 신라에 두 손을 들게 된다.

경북대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저자는 전쟁사를 전문으로 하는 역사학자로, 현재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32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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