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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 '인형의 집'에서 나온 조선의 '노라'는 과연 행복했을까

채만식
채만식

'인형의 집'을 가출한 노라는 과연 행복했을까. 인형의 집은 안락한 삶과 세 아이를 두고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서 집을 나간 여성 노라를 중심으로 1879년 노르웨이에서 발표된 희곡이다. 발표된 지 40여 년이 지난 1920년대, 노르웨이 여성 노라는 멀고도 먼 아시아 작은 나라 조선 신청년들에게까지 알려져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남편의 보호를 뿌리치고 나간 노라의 혁명적 삶은 일본을 거쳐 조선어로 번역되었고,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수많은 조선 신여성들이 자신을 노라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조선 신여성의 대표적 지성이었던 나혜석이 노라를 주제로 한 시를 발표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1920년대는 물론 1930년대에도, 그리고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어떤 현실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해방을 주창했던 신여성들은 하나 둘 결혼 생활에 실패하면서 자립은 고사하고 전락에 전락을 거듭하는 등 백기를 들고 물러났다.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며 왕의 말이 출전한 경마대회에 뛰어들었다가 달리는 말발굽에 차여 죽은 것이 1913년이었다. 사회적으로 훨씬 진보된 서구의 상황이 이렇고 보니 조선에서 여성해방과 같은 말이 먹혀들 리는 없었던 것이다.

채만식의 장편소설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는 입센 원작 '인형의 집'의 결말 그 이후의 이야기를 조선 상황에 맞추어 창작한 것이다. 가출한 조선의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에 따르면 조선의 노라는 집을 나온 후 결혼한 친구의 집에 잠시 빌붙어 살다가 가정교사와 화장품 판매원 등을 전전한다. 마침내 카페 여급이 되어서 정조까지 잃고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전화 교환수, 버스차장, 엘리베이터 걸이 여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여성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적의 일자리이던 시대였다. 여학교 재학 중 결혼 한 노라에게 자립을 위한 기술이나 학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울러 식민지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일본 유학생 출신의 남성조차 일자리를 얻지 못해, 사회 전반에 '고등 룸펜'이 흘러넘친 때가 아니었던가.

특히 '인형의 집을 나와서'가 발표된 시기는 나혜석이 천도교 대표 최린과의 불륜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김일엽과 김명순 등 조선 신여성 1세대를 주도한 인물들이 삶의 전락을 거듭하던 때였다. 소설가 채만식의 눈앞에 시대를 앞서 살았던 신여성의 신산한 삶의 여정이 직접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채만식은 그들의 희생적 삶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적인 빛을 발견하고 있었다. 마침내 인쇄공으로 취직한 노라가 회사의 고용주로 등장한 전 남편과 새로운 투쟁 속으로 활기차게 들어가는 소설의 결말이 인상 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여성해방과 같은 혁명은 시대의 그늘에서 비롯한다는 것, 그 점을 채만식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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