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영화배우의 그림값

피카소, 세잔, 고갱, 마티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을 풍미한 화가들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그린 초상화 모델은 누구였을까?

혹자는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워낙 아름답고 기품 있는 여성인 만큼 누구나 그리고 싶은 욕구가 들지 않을까. 미술을 아는 분이라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에 등장하는 황금빛 가운을 입은 여인, 에밀리 플뢰게를 연상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엉뚱하게도 앙브루아즈 볼라르(1865~1939)라는 프랑스 남자다. 그의 직업은 화상(畵商)이었다. 요즘 말로는 아트 딜러다.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활동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스페인 촌사람인 피카소가 내내 굶주리다가 돈을 만지기 시작하고, 훗날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많은 화가들이 그와 친해지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팔아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초상화를 수없이 그려 선물했다. 피카소가 "그 어떤 미인(美人)보다도 가장 많은 초상화를 남긴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다.

화가의 그림은 시장의 선택을 받아야 하므로 아트 딜러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일급 딜러가 팔면 당연히 그림의 가격이 달라진다. 시장성이 최고의 가치이고, 작품성은 두 번째 요소다. '팔리면 작품, 안 팔리면 쓰레기'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그림은 순수와 상업의 경계선 사이를 걷는 예술이다. '사업을 잘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라는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얘기는 전혀 빈말이 아니다. 재벌 화가부터 굶주리는 화가까지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걸 보면 미술만큼 자본주의'물질문명에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요즘 영화배우 하정우의 개인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2천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고 그림이 다 팔렸다고 한다. 최고 가격이 1천800만원이라니 가난한 화가들의 박탈감이 엄청날 것 같다. 배우가 틈틈이 그린 취미 수준의 그림이 수십 년 활동한 중견화가만큼 비싸다고 하니 '스타 프리미엄'이 그림값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미술평론가들의 평가는 대개 이렇다. '표현은 신선하다' '전업작가의 자질이 엿보인다'. 행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나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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