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빨간 피터의 고백

2016년 새해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 달을 훌쩍 넘겨 2월의 첫날이다. 음력으로 따지면 양력 2월 8일부터 시작되는 진짜 붉은 원숭이의 해가 이제 정말 눈앞까지 다가온 셈인데, 이미 벌써부터 붉은 원숭이의 해를 겨냥한 다양한 테마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된 판촉 활동도 한창이다.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로 영리하고 재주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고 해서 예로부터 잔나비로 불려왔다. 거기에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정열과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색이 더해진 붉은 원숭이의 좋은 기운을 받아 올 한 해 행운이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

원숭이라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으로 '손오공'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의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이다. 붉은 원숭이의 모습을 한 손오공은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삼장법사를 도와 천축국으로 가서 불경을 구해 온다. 신통력과 도술을 지녔으며 근두운을 타고 여의봉을 휘두르면서 요괴를 무찌르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중국에서는 올해 손오공같이 재주 많은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빨간 피터의 고백'이 떠오른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고 추송웅 씨의 모노드라마로 잘 알려진 연극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작품이다. 1977년 8월 20일 서울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첫 막을 올린 이 연극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 이후 7년간 480여 회나 무대에 올려져 1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우리나라 1인극 역사의 신화로 남아 있다.

연극은 원숭이 피터가 어떻게 인간 세계로 끌려 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 세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학술원에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프리카의 어느 황금해안에서 사냥 탐험대에 붙잡힌 피터는 철창에 갇히게 되고, 자유를 잃어버린 피터는 출구를 찾기 위해 스스로 원숭이이기를 포기하고 죽을힘을 다해 인간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결코 자유를 찾을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살기 위해 찾은 출구인 것이다. 피터는 인간으로 향한 이 출구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었노라 고백한다.

인간에게 붙잡힌 한 원숭이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인간을 흉내 내며 살아가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인간도 살기 위해 스스로의 자아와 개성을 외면하고 사회와 현실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둬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 소망하는 일이 있는가? 가슴 속 깊은 소망을 꺼내어 힘껏 소리쳐 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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