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불행한 설날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묵은 나이만큼 명절을 맞은 햇수가 더해졌는데도 언제나 새롭다. 전국의 도로가 설날 앞뒤로 뒤엉켜 거북이처럼 제자리걸음일지언정 늦은 밤 도착할 가족을 기다릴 게 분명한 친지와 부모를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해마다 치러지는 귀성 전쟁은 설 당일 하루 이틀 머무는 동안 가족이라는 튼실한 혈육의 끈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 후유증은 그다지 두렵지 않다는 표정들이다. 한 해 만에 몰라보게 자란 손주들과 부모 형제의 무탈함을 안도하면서 헤어지는 시간의 아쉬움을 나눠 가진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처럼 행복한 설맞이를 치르는 가족들과 달리 반대편 분위기에서 설맞이를 하는 가족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설날이 다가오는데도 설빔은 고사하고 무사하게 이 하루를 버텨 주길 갈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병원의 중증환자와 가족들이다. 설날의 즐거움은 잊은 지 오래고 오로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대하며 현대의학의 무한한 마법을 간절한 심정으로 갈망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편리성이 더해지면서 이에 따르는 위험요소는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의 편리성은 처참한 사고의 위험인자를 잉태하고, 많은 가족 중 한 사람을 병원이라는 달갑잖은 공간에서 만나게 한다. 충분한 열에너지 소비의 풍요는 화재의 위험성을 내포, 많은 화상환자들을 병원으로 향하게 만든다. 또 하루 만에 지구의 절반을 다녀올 수 있는 세계화의 속도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외래병에 노출되게 하는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온 가족의 걱정과 배려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새해가 다가오는데 굳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혀 우울한 심정에 빠져들게 하는가 하고 탓할 수도 있다. 운이 좋질 않아서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개인의 불행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불행이 언제든지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사실에서 사회의 구조적 위험인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이다. 행복한 사회는, 불행한 사람들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기며 이를 제도적인 장치로써 보듬어 안고 함께 고민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너의 불행은 너의 것일 뿐'이라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는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의 싹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사회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공동체 사회의 선진의식은 타인의 불행을 나의 불행으로 여기는 정도의 수준에서 가늠된다. 설을 앞두고 내 이웃과 먼 친척, 또는 선후배 친구들을 한 번쯤 되돌아보자. 혹여 급작스러운 불행한 사고로 병원이나 또 다른 어려움에 놓여 설날을 맞이해야 한다면, 함께 고통의 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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