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치는 주말 아들과의 첫 제주여행
제주시민의 따뜻한 정을 가슴에 담아 왔습니다
※지난주 어느 오후 주간매일 취재팀에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폭설과 한파가 몰아친 제주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오신 매일신문 10여 년 애독자의 전화였습니다. 눈보라 치는 제주의 길거리에서 따뜻한 시민을 만나, 제주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담아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런 분을 널리 알려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라는 것을 알려야 될 것 같아 이렇게 두서없이 적어 보냅니다. 꼭 채택되어 매일신문 독자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에 살고 있는 류충하이며, 대구북구새마을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작정 글을 보내는 것은 제주에서 겪은 일을 매일신문 독자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함입니다.
1월 23일 토요일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오후 5시경에 제주공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제주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질 못해 예전부터 가자고 성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을 잠깐 접어 두고 즐거운 시간을 상상하며 제주에 내렸습니다.
미리 차량 렌트를 해두었기에 차량을 인수했습니다. 아이가 어느 연예인이 홍보하여 이름이 난 제주시내 ○○통닭을 먹고 싶다기에 눈보라가 심한 길을 조심조심 운전하여 통닭을 샀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운전이 힘들 것 같아서 공항에 다시 차를 반납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고 밖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정말 전쟁터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작하는 2박 3일의 제주 첫 여행은 너무나 힘들게만 느껴졌습니다. 공항 밖 상황은 모든 사람들이 공항을 빠져나가려고 인산인해라 저를 정말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아이와 함께 완전무장을 하고 시내로 걸어가서 잠깐 머무를 수 있는 숙소라도 잡기 위해 눈보라 치는 공항을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정말 공항 밖의 상황은 눈보라 치는 영화 속의 한 장면과도 흡사했습니다. 저는 1년에 한두 번 제주에 가는데 공항에서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용두암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용두암에 가면 잠깐 머무를 숙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스마트폰에 용두암을 입력하여 물어물어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어느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발이 시리다고 아우성이며 아빠 때문에 제주 첫 여행을 모두 망쳤다고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아주머니 한 분께서 우리의 사정이 안돼 보였는지 사정을 물어보시기에 제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좀 알아봐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여러 군데 전화를 하였으나 모두가 방이 없다고 하신다면서 그러면 이 근처 가까운 데 해수탕이 있으니까 거기라도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다 하고 그 방향으로 눈보라를 헤치면서 걸었습니다. 그때 시간이 저녁 8시 가까이 되었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몇몇 마트에만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마트 앞에서 아주머니 한 분과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부탁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저희가 묵을 수 있는 방 하나만 어떻게 구해줄 수 없는지 아니면 혹시 아주머니 집에 작은 방이라도 하나 하루 빌려줄 수는 없는지 부탁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 오늘 모든 방이 예약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잠깐의 통화 후 아주머니는 집이 누추하지만 남편이 좋다 하여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감사하다고 하면서 아이와 함께 제주시 용담2동 남양빌라 김두왕 씨 댁에서 이렇게 눈보라 치는 제주의 첫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하니 극구 사양하시며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지 물어보라 하시며 저에게 제주에 대한 좋은 정보를 많이 주셨습니다.
생면부지인 저와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아이들 방까지 내어 주신 김두왕 씨 부부와 아들 태영(제주중1), 권율(제주서초) 군에게 감사합니다. 아침에 따뜻한 국과 밥도 해주시고 용두암 근처 숙소까지 잡아 주신 너무 고마운 시민에게 감사의 표현을 글로 하고 싶습니다.
대구에 예정보다 하루 늦은 26일 도착했습니다. 32년 만의 기록적인 눈 때문에 제주에 있는 3일 동안 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아이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여행 못지않은 큰 교육이 된 것 같아서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보내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렇게 좋은 분들이 계시기에 살 만한 사회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커가는 아이에게 산 교육이 된 것 같아서 정말 가슴 뭉클한 정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김두왕 씨 부부와 저희 가족은 이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제주를 떠나는 날 공항에서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 그것은 따뜻한 사람 사는 '정'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류충하(대구 수성구 범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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