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일일이 대응할 필요 있나?"

보름 전 점심 자리에서 '권성훈 기자 사용설명서'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주 절친인 여배우(뮤지컬 '미쓰코리아' 주연 이지영)가 주변 사람들에게 권 기자 대처법을 설명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일이었다. 이 여배우는 술자리 등 사석에서 끝을 모르고 날려대는 기자의 썰렁한 개그에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년간 지켜보면서 '일일이 대꾸하거나 리액션(맞장구)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였다. "권 기자는 말장난 개그나 이상한 행동에 반응을 계속 해주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 때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팁이었다.

그날 점심 자리에서도 기자와 비슷한 캐릭터의 썰렁 개그 만담 커플인 안희철 극작가(극단 초이스씨어터 대표)와 함께 이진훈 수성구청장에게 대처하기 힘든 황당한 개그를 계속 날렸고, 이 구청장은 다소 반응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졌다. 그러자 이 여배우가 '권 기자 사용설명서'에 관한 팁을 줬다. "구청장님~, 권 기자 얘기 다 들어줄 필요 없습니다. 쬐끔이라도 반응이 온다 싶으면, 쓸데없는 개그 욕심을 부려 증상이 더 심해집니다." 이 말을 들은 이 구청장은 알았다는 듯, 금방 대처법을 익혔다. 급기야는 썰렁한 개그를 시도한다 싶으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권 기자 대처 응용법'까지 선보였다.

기자의 소속 부서인 특집부에서도 이런 상황은 펼쳐진다. 부장도 권 기자가 또 무리한 개그를 시작한다 싶으면, 딴 곳을 쳐다보거나 못 들은 척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식사나 술자리에서 황당한 개그가 나오면, "일일이 대응할 필요 있나?"고 여유 있게 넘어간다. 같은 부서 한 선배는 권 기자 대처법은 알지만, 어느새 말장난 개그에 전염이 되어 요즘은 예전에 자주 하지 않던 자신만의 개그를 날린다. 한 번씩은 빵 터뜨리는 재미를 그 선배는 아는 듯하다.

사실 '권 기자 사용설명서'는 유용하다. 말장난'이간질'감정이입'조롱'19금 등 유형별로 썰렁 개그를 10년 넘게 연마해온 기자에게 '무반응'과 '화제 돌리기' 등은 마음에 작은 상처(?)를 주고, 개그에 대한 불타는 욕구를 꺾어놓는다. 특히 웃기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무반응이 지속되면, 살짝 삐치면서 개그를 접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까이서 기자를 지켜본 회사 선후배나 지인들은 기자의 그런 성향을 간파한 것이다.

기자의 이런 사생활 얘기를 하면서, 시끄러운 우리 대한민국 사회도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있나?'는 무반응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정치인이나 기업인, 연예인 등 온갖 일들이 터지고, 막말 등으로 인해 국민 피로도가 더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권 기자 사용설명서에 나오는 '일일이 대응할 필요 있나?'식의 팁을 참고하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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