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호모 아키비스트-일상의 기록

얼마 전 딸아이 방에 들어갔더니 아이가 무언가를 읽고 있다가 훌쩍이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뭐하니?"했더니 자신이 읽고 있던 무언가를 내민다. 그것은 엄마인 내가 적은 딸아이의 태교일기와 육아일기였다.

당시 초음파로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 태동을 감지하며 썼던 느낌과 아이를 기다리며 썼던 바람들이 태교일기에 담겨있다. 육아를 하면서 옹알이부터 말문이 트일 때까지의 성장 기록과 말의 신동이라고 느꼈을 만큼 깜짝 놀랐던 아이의 어록들이 적혀 있는 육아일기는 아이의 동생이 생길 때까지 기록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가 어떤 대목에서 눈물이 났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엄마의 사랑을 담은 기록이라는 것을 느끼고 눈물을 훔쳤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예술계에도 일상의 기록을 잘하는 대표적인 두 분을 알고 있다. 한국화가 N선생님은 미술 관련 행사나 예술 관련 행사에 참여할 때면 꼭 휴대전화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고 그것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신다. 그것을 보며 당시 분위기나 참석한 사람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구 예술의 뒷이야기도 추억할 수 있다. 또 한 분은 성악가 CH선생님이다. 크고 작은 일 가리지 않고 메모로 남기신다. 그래서 자신이나 성악가를 후원한 분들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연주여행 중 여정과 소회를 휴대전화 메모에 시간마다 남기고 계신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당시의 생활 정보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정보를 잘 찾아내서 잘 꿰어내고 스토리를 입힌 제작자들도 우수하지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기록하고 기억해 준 사람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지인이 한문고전번역연구원에 근무하면서 한문 기록을 번역한 '빈방에 달빛 들면'이라는 책을 보내 주셨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쓴 부인의 제문을 모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여느 이론서와 달리 선비들의 정서와 속 깊은 아내에 대한 사랑은 물론 당시를 살았던 여인의 녹록지 않은 삶을 읽을 수 있다.

이덕무의 메모집 '양엽기', 유희춘의 '미암일기', 오희문의 전쟁기록 '쇄미록', 심노숭의 '자저실기', 유만주의 '흠영' 등은 선비들의 메모이거나 일기들로, 그들의 일상이 개인적이라 하더라도 모으고 기록하니 역사가 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호모 아키비스트, 기록하는 인간은 기록을 평가하고, 수집'정리'보존하는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일상과 주변 사람에 대한 호기심, 사랑, 애정을 가진 평범한 우리들이기도 하다.

2016년 새롭게 일기를 써 보겠다고 일기장을 마련해 놓고 한 달이 지나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의 일상과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반성하며 일기장을 펴려 한다. 그리고 2016년 첫 일기의 첫 줄은 '사랑한다, 감사하다'로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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