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당시 케네디 상원의원은 대선 운동을 하면서 '미사일 격차'(missile gap)라는 용어를 만들어 '히트'했다. 핵전력에서 미국이 소련에 크게 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소련의 핵전력 증강에 대한 미국 국민의 경계심을 고조하려는 '엄포용'이었다. 미국의 실제 핵전력은 소련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당시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독도 핵무장 시킬 수 있음을 암시해온 터였다. 이는 소련에 독일과의 전쟁에서 무려 2천여만 명이나 희생된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흐루쇼프는 이를 막기 위해 서베를린을 볼모로 삼았다.
그는 1958년 11월 미국·영국·프랑스에게 서베를린에 주둔 중인 군대를 6개월 내에 철수하라고 통보했다. 그렇지 않으면 서방의 서베를린 통행 통제권을 동독으로 넘기겠다고 했다, 1960년, 1961년에도 같은 요구를 되풀이했다. 흐루쇼프는 서방이 말을 듣지 않으면 동독과 단독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서베를린의 운명은 동독에 맡길 작정이었다.
미국은 결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베를린에서의 철수는 서유럽을 방어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 케네디가 '베를린 위기'가 한창이던 1963년 서베를린을 방문해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Ich bin ein Berliner)라며 서베를린 수호 의지를 천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흐루쇼프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의 서베를린 수호 의지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러면 왜 흐루쇼프는 그런 도박을 했을까.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 한가운데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취약했다. 이를 노린 것이다. "베를린은 서방의 음낭이다. 서방이 아파서 비명을 지르게 하려면 베를린을 꽉 움켜쥐면 돼."
개성공단이 가동 11년 2개월 만에 폐쇄됐다. 앞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재가동은 어려울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교류협력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남북 간 위기가 발생했을 때 '볼모'로 잡힐 가능성도 상존한다. 흐루쇼프식으로 말해 '남한의 음낭'이다. 북한이 이를 꽉 움켜쥔다면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 폐쇄는 잠재적 우환거리 제거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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