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경제학 문외한도 한계효용체감(限界效用遞減)의 법칙은 익숙하다. 사전은 '일정 기간 소비하는 재화의 수량이 늘수록 재화의 추가분에서 얻는 한계 효용은 점점 줄어든다는 법칙'이라고 어렵게 설명한다. 그냥,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꾸 먹으면 질린다라거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속 편하다.

그런데 이 법칙은 사람의 감정이나 말 등에도 적용된다.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을 자주 보면, 웬만히 잔인한 것은 감흥이 없다거나, 얼토당토않은 말도 자꾸 들으면 적응이 돼 아무렇지 않게 느낀다. 막장과 같은 이런 분위기가 판을 치는 것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얻는 부대 효과 때문이다. 역대 급 비난을 받은 막장 드라마가 40%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막장의 효과를 확실하게 증명한다.

이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대구에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대구는 전국적으로 '긍정적인' 관심을 끌 만했다. 김부겸 대 김문수의 격돌과 유승민 등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천 여부 때문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변화의 조짐도 분명히 드러난다. 대구로서는 '수구꼴통'이라는 전국적인 오명을 어느 정도 벗을 기회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스스로 기득권자, 또는 권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대개 넓게는 나라, 좁게는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발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개인 영달 추구가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는 물론, 대통령과 나라를 이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 쏟아지는 새누리당 공천 후보들의 막말을 보면 확신이 든다. 그리고 이들의 막말 퍼레이드는 '긍정적인 관심'을 순식간에 부정적인 비난으로 바꿔버렸다.

김문수 후보는 '북한의 핵실험에 김부겸 후보도 책임이 있다'는 보도자료를 돌렸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윤두현 후보 행사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생일에 사무실 개소식을 할 정도는 돼야 국회의원을 한다"고 했다. 또,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한 방송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인간관계가 헌법보다 먼저"라고 했다.

초등학생에게도 먹히지 않을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입과 머리 사이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은 아무리 막장이었지만, 이는 세 분의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거꾸로 국민의 처지에서는, 이런 이들에게 그동안 높은 자리를 맡겼다고 생각하면 너무 자존심 상하고 참담하다. 그러니 이 경우는 절대 아니라고 전제하는 것이 국민과 그들, 모두에게 편하다.

다른 하나는 나라와 대통령, 지역사회의 발전을 빙자한 개인 영달이다. 이들은 모두 좋은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머리가 좋고, 그 이후의 행보도 도지사, 경제부총리, 국회의원 등 굵직굵직하다. 당연히 이런 것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스스로 먼저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철저한 손익계산에 바탕한다. 최소한 대구 유권자, 특히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浮動層)에게 충분히 먹힐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공천이나 총선에서 훨씬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막말의 뒷면에는 유권자의 한글 독해와 사고 능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오만함과 함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숨어 있다. 터무니없는 말이 이미 터졌으니,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50여 일 동안 이들이나 자칭 '진박' 후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와도 유권자의 동요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평범한 원리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중립이어야 할 대통령이 '진박 후보를 도와달라'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진박효용체감(眞朴效用遞減)의 법칙을 우습게 봤다. 가는 곳마다 진박 타령이니 피로감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뜻에서 막말 파티는 역설적으로 대구의 기회다. 막말 정치인을 심판할 기회이고 전국적으로는 명예 회복의 기회다. 기회를 놓치면 남는 것은 위기와 오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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