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이루어진 사랑은 진정 남루한 일상인가?-은희경의 '빈처' ②

은희경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내들은 대체로 처녀가 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처녀가 될 수 없기에 그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운명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 속의 아내들은 살아있는 남편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잠재적 과부들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아내는 '나는 연애하고 싶다. 남자에게 심각한 얼굴로 헤어지자고 한 뒤 술을 마시고 싶다. 같이 자자고 요구하는 남자에게 눈물만으로 사랑을 확인해달라며 폼 잡고 싶다. 누구든 애태우고 싶다. 누구도 내 환심을 사려 들지 않을뿐더러 나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는다.'('빈처' 중에서)라고 넋두리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소박만 맞는 하찮은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아내들은 대체로 아내이기보다 영원히 애인이기를 소망합니다. '애인 같은 아내'이기를 소망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꿈은 대부분 꿈에 그치고 맙니다. 일상 속에 갇힌 꿈은 완벽하게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 운명이니까요. 나아가 힘든 현실 속에서 어려운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남자들에 비해서는 아주 낭만적이어서 대부분의 남편들은 '웃기고 있네'를 연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결코 차별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남성들과는 분명히 '다른' 존재라는 구별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페미니즘 운동도 그런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요? 지금껏 여성이 수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고 그 책임을 남자들에게 전가하여 '너희들도 한번 당해 보라'는 식의 복수극을 전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들 스스로를 속박시키는 일이 아닐까요? 남성과 여성은 서로 적이 아니라 마주 보면서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동반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8월 29일

난 그이가 매일 일찍 들어오는 것도 싫다. 일찍 오는 것이 가정에 충실한 거라는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 자기 시간을 갖지 않는 인간은 고여 있는 물처럼 썩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나도 못 견딜 외로움이라니!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이렇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은희경 '빈처' 부분)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을 이루고 나니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니요. 그것도 모자라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이라니요. 이러한 인식에는 행복한 결혼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다름 아닙니다. 모든 사랑은 평범합니다. 특별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습니다. 섬세함이 소심함이 되고, 관심이 이기심이 되고, 배려가 희생이 되고, 편안함이 무관심이 되고, 순수함이 답답함이 되고, 우려가 힐난이 되고, 서로 다름이 부담이 되고, 질투가 상처가 되는 것이 소위 특별하고도 위대하다고 믿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히려 일상적이고 평범합니다. 황동규의 시처럼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중에서)인 것이지요. 이러한 깨달음은 소중합니다. 자기만이 특별한 삶을 살아간다고 몸부림을 쳐도 그건 궁극적으로 일상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 삶이 일상적이라면 그 일상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그러한 일상을 아름답게 꾸며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러한 꾸밈에는 일상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야기는 이제 막바지로 흘러갑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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