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서 모임을 한 뒤 밤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러 갔다.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막 개찰구로 들어서는데 양손에 짐을 든 한 할머니가 다가와 길을 묻는다. "아저씨, 안심 가는 기차 타려면 어디로 가요?"
"예? 할머니 저쪽으로 가셔요." 바쁜 걸음을 내디디며 얼결에 대답했다.
얼른 대답을 해드리고 돌아서다 '아차, 그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봤더니 할머니는 어느새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시는 게 아닌가.
'헉, 어쩌지? 내가 이대로 가버리면 할머니는 반대 방향으로 가시겠지? 그쪽에 도착해서야 원하시던 방향은 반대쪽이라는 걸 아시고 다시 먼 길을 돌아오셔야 하겠지? 엉뚱하게 알려준 나를 원망하시겠지? 시간이 너무 늦은데 어쩌면 막차를 놓치실 수도 있잖아? 하지만 나도 시간이 급한데?'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전 역을 막 출발해 역 구내로 들어온다는 사인이 들어와 있다. 저 기차를 놓치면 15분을 더 기다려 막차를 타야 하는데….
'그냥 내 갈 길로 가버릴까? 할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더 물어보실 수도 있잖아? 아니야, 나한테 길을 물으셨는데, 만약 잘못된 곳으로 가셨다가 다시 돌아가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어. 손에는 커다란 보퉁이까지 들고 계시던데….' 짧은 시간 갈등이 60헤르츠 이상으로 교차한다.
'그래, 기다리자. 나야 다음 차 타면 되지 뭐. 할머니는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시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결심을 해버리고 나니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화장실 앞에서 할머니가 나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떠오르는 책 한 권. 톨스토이의 동화 '구두장이 마틴'이다.
마틴은 아주 작은 마을의 구두 수선공이다. 그의 가게 바깥에는 온갖 사람들이 바쁘게 길을 걷는다. 마틴은 늘 그런 모습을 보며 일을 한다. 일을 끝낸 밤, 성경책 속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부자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생각에 빠진다. '예수님이 나에게 오시면 나도 잘 대접을 할 수 있을까.'
다음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는데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청소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시린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마틴은 얼른 그를 난롯가로 불러들여 따뜻한 차 한 잔을 주어 몸을 녹이게 했다. 얼마 뒤 얇은 옷만을 걸친 채 아기를 감싸 안고 서 있는 여인을 불러 따뜻한 수프를 주고, 자신의 낡은 외투를 주어 아기를 감싸게 했다. 사과를 훔쳤다고 다투던 소년과 할머니를 화해시키기도 했다.
밤이 되어 마틴이 잠자리에 들어 성경책을 읽으려는데, 낮에 보았던 청소부, 아기 안은 여인, 소년과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마틴 나였네." 예수님이 정말 그를 찾아온 것이다!
길을 가다가, 일을 하다가, 곁의 사람들을 살펴보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혹시 옆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바로 나를 찾아온 예수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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