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척, 조선의 사냥꾼/이희근 지음/도서출판 따비 펴냄
우리는 흔히 '호환'(虎患)이라는 말을 그저 아이들 겁주려고 지어낸 말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구한말 원산에서만 1년에 500장 정도의 호피가 거래되었고, 조선 초기 경상도에서만 매년 수백 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으며, 그 호랑이가 임금이 사는 도성 안까지 출몰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호랑이를 잡는 전문 사냥꾼이 있었다. 목궁으로 무장한 '산척'이나, 이후 조총으로 무기를 바꾼 '산행포수'(산포수) 등은 호랑이 사냥꾼을 일컫는 말이다.
한때 충청'전라'경상도의 병적에 등록된 산척과 산행포수만 수천 명이나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으로, 병자호란 때는 왕실 호위무사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는 침략자들을 벌벌 떨게 했던 전쟁영웅이요 민생의 파수꾼이었다. 이 책의 부제가 '호랑이와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잊힌 영웅들'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산척은 최하층민인 백정의 한 부류이다. 백정은 떠돌아다니며 유기나 가죽을 다루거나, 공연을 하기도 하고, 도축업을 하기도 했던 집단으로, 그들은 대부분 본업 말고도 사냥에 능했으며, 이들 가운데 전문적으로 사냥을 하는 집단이 생겨나면서 '산척'이라고 불리게 됐다. 사냥을 생계 수단으로 삼았던 만큼 이들은 출중한 무예실력을 지녔다. 호랑이와 곰 같은 맹수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는 수호자 역할도 맡았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천민인 산척의 '공로'를 역사에 남길 리 만무했다. 이런 산척이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것은 전쟁 때문이다.
임진년 왜군에게 속수무책으로 패하기만 할 때, 거창 우현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친 의병이 바로 산척들의 주축이 된 부대였다. 이후 조선은 산척들을 체계적으로 동원했고, 이후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는 최우선 동원 대상이었다. 병인양요 당시 정족산성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고, 신미양요 때는 미군의 침략을 저지했다. 비록 대부분이 전사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지만, 미군 장교는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라며 찬사를 남겼다. 그리고 군대를 돌렸다. 산척과 같은 군대가 곳곳에 숨어 있을 것을 우려한 결과이다.
하지만 산척(산행포수)은 민중의 무장투쟁을 약화시키려던 일제가 1907년 9월 '총포화약류단속법'을 발효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무기를 빼앗기고 생계 수단을 잃은 그들은 대거 의병활동에 참가하게 되고, 유인석의 제천의병과 홍범도 부대가 산척으로 구성된 대표적 의병부대였다. 한반도를 떨게 했던 호랑이도 일본, 러시아 등으로 수출하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남획으로 인해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책은 우리의 역사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산척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가는 오딧세이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일상과 군사제도, 의병 투쟁의 모습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32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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