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세대 정치인의 상징이었던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경북 포항 출신인 이 전 총재는 부산상업고를 나와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해 4'19 혁명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4'19 세대 대표주자로서 정치권에 입문한 이 전 총재는 7대 국회 때 신민당 전국구 의원을 지냈고, 11대를 제외하고 14대까지 내리 당선, 7선 의원을 역임한 정계 원로다.
이 전 총재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서도 야당 외길을 걸었고, 야권의 두 거목인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어깨를 견주며 한국 정치사를 써나갔지만 양김의 그늘 아래서 대권 꿈이 좌절된 야당 지도자로 평가된다.
고인은 1967년 만 30세에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7대 국회에 입성, 1976년 39세의 나이로 당 사무총장직과 부총재직에 잇따라 오르면서 화려하게 정계 지도자로 부상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후보와 관련한 양김의 갈등 국면에서 YS의 편에 섰다. 하지만 1990년 YS의 3당 합당으로 이 전 총재는 그와 결별했다. 이 전 총재는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 총재로 선출된 뒤 이듬해 DJ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자 제1야당 민주당의 단독 대표가 되고 당 총재 자리까지 오르며 차기 대권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DJ가 1995년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동교동계는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고, 이 전 총재는 이때 DJ와 완전한 결별을 하게 된다. 이 전 총재는 민주당 간판을 유지하면서 1996년 15대 총선과 1997년 포항 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던 이 전 총재는 1997년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부산상고 후배이자 민주당 시절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2007년 대선 때는 고려대 상대 및 고향 후배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원했다.
한편 이 전 총재의 장례식은 '4'19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특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 9시, 장지는 4'19 국립묘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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