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자동차에서 차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광고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거기에서 이민을 가게 된 노수린 씨는 답사 비용을 위해 SUV 자동차를 중고 매매상에 넘기고는 이런 글을 썼다고 한다. "안녕 내 젊은 날/처음 널 만나던 날의 떨림을 기억할게/내게 주었던 행복 돌아오지 않을 시절과 함께." 광고에는 택시 운전기사인 김영귀 씨가 운행한 누적 주행 거리 75만㎞의 차를 폐차하는 과정도 담겨 있다. 폐차장으로 가는 낡은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시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섭섭하기만 하단다. 60대 베테랑 택시기사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광고 중간에 나오는 '차를 떠나보내면 함께한 추억도 떠나갑니다'라는 문구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겨울 어느 날 몇 년 동안 타던 차를 중고차 상사에 두고 왔을 때, 내 아내는 그날 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결국 다시 가져왔다. 지금 타고 있는 차는 사실 내게는 너무 크고, 연비도 좋지 않아 팔고 싶다가도 추억이 뭔지 자꾸 망설여지게 된다. 말 못하는 기계, 똑같아 보이는 기계라도 쉽게 내다 팔 수 있을 만큼 '똑같지는' 않다. 그것은 자동차라는 이 특별한 기계가 다른 어떤 기계들보다 내 신체가 연장된 일부분처럼 기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핸들의 높이, 자동차의 시트와 미러의 위치는 오직 내 몸에만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 타이어의 마모 상태, 미션의 변속 시점도 나의 운전 습관을 반영한다. 심지어 차 안의 향기, 시트에 파인 내 엉덩이 자국, 라디오 주파수 번호까지 컴퓨터나 텔레비전 등 다른 어떤 기계들보다 자동차는 신체의 연장에 더 가깝다. 그래서 차에 이름을 지어 부르는 순간부터 차는 내게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가 된다.
아내의 눈물은 우리가 차에서 나눈 온갖 이야기와 다녔던 길까지 이 차가 우리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이 차를 다른 누군가에게 파는 것이 너무 어렵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새것을 사서 느끼는 만족감으로 겉으로는 아닌 척할 뿐, 내가 쓰던 낡은 것을 내다 팔면서 다들 속으로는 조금씩은 아쉬워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단지 아까워서가 아니라 추억 때문에 말이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마다, 늘어선 건물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시간을 견디고,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세상은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저마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야기가 들릴 때 자동차는 그저 기계가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다가오게 된다. 아파트 재건축 소식에 들떠 하고, 내가 살던 동네를 재개발하겠다는 서울 살다 내려온 국회의원 후보의 말에 솔깃해지는 것은 왜일까. 나는 아직 세상의 깊이를 보기에, 그 이야기를 듣기에는 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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