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위대한 탈출

최근 모 방송국의 대하드라마 '장영실'에서 장영실이 노비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는 극적인 신분상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시대든지 역동적인 사회는 신분 변화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한국이 지난 40~50년간 성공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은 누구나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논쟁 중 하나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흙수저' '금수저' 논란이다. 노력하면 내 아이는 금수저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해마다 줄고 있다. 자식의 계층 상승을 기대하는 비율도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세대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응답은 2009년 37.6%에서 지난해 22.8%로 크게 떨어졌다. 이에 비해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응답은 같은 기간 45.6%에서 61.3%로 급격히 치솟았다.

자녀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사회적 계층이 상승할 수 있다고 보는 긍정적인 응답은 2009년 48.3%에서 지난해 30.1%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반면 부정적인 응답은 같은 기간 29.8%에서 51.4%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이 같은 부정적인 인식이 소득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확산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교수는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논하고 있다. 디턴 교수는 불평등을 두고 '양날의 칼'이라고 말한다.

'좋은 불평등'은 삶을 개선하기 위한 성장의 인센티브다. 개인은 누구나 스스로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미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나쁜 불평등'은 사회가 양극화돼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세대 간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가속화된다고 한다.

'성장과 분배' 혹은 '효율과 분배' 간의 완벽한 균형은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무분별한 무상복지 정책은 질병과 빈곤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디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상속세 등을 강화해 부의 대물림을 어렵게 하고, 수준 높은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도 최근 양극화되는 분위기다. 대형병원의 지나친 첨단 의료장비 경쟁과 이윤 추구는 자칫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고 보편적 의료복지가 훼손될 수 있다. 공공의료의 효율적인 질적 성장을 통해 계층 간의 의료 혜택이 편중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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