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스라엘에서 배운다] 5)기적을 낳은 농업…이스라엘 농업의 기수, 네타핌

땅속 호스로 방울 물주기 '그린혁명'…"사막서 쌀 생산이 목표"

화장품을 만드는 식물인 조조바를 키우는 농장. 나무 하나하나에 점적관수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준다. 땅에 물이 스며든 것이 둥그런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화장품을 만드는 식물인 조조바를 키우는 농장. 나무 하나하나에 점적관수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준다. 땅에 물이 스며든 것이 둥그런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네티 바락 이사가 네타핌에서 제조하는 점적관수 호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네티 바락 이사가 네타핌에서 제조하는 점적관수 호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경제수도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2시간을 달려 브엘샤바 부근에 있는 네타핌 본사를 찾았다. 네타핌(Netafim)은 히브리어로 '물방울'을 뜻한다. 회사 입구에 있는 물방울 형상 조각 작품과 건물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이 황무지였다는 말이 도저히 실감 나지 않았다.

네티 바락(72) 네타핌 이사가 취재진을 먼저 안내한 곳은 네타핌의 '어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곳. 69년 전인 1947년 이곳에 살던 키부츠 농민들이 40㎞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관개시설을 만드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통나무를 나르는 모습, 황무지에 덩그러니 남은 집터…. 1946년 키부츠를 만든 주역들의 모습이었다. 황무지를 옥토(沃土)로 만들기 위한 당시 농민들의 땀과 의지가 느껴졌다.

◇땅속 호스로 방울 물주기 '그린혁명'…"사막서 쌀 생산이 목표"

◆우연한 발견, '그린혁명' 가져오다

키부츠를 모태로 1965년 네타핌은 설립됐다. 땅속에 호스를 묻어 식물뿌리에 필요한 만큼의 물만 공급하는 '점적관수'(Drip Irrigation'방울 물주기)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지름이 5∼20㎜ 되는 호스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작물에만 물이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통해 물 이용 효율을 극대화시켜 물을 적게 쓰면서도 효율적으로 작물을 키울 수 있게 한 것. 호스길이는 짧은 것은 500m, 긴 것은 6천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네타핌의 관개시스템은 8~15년, 길게는 20년까지도 설치 당시와 똑같은 정확성을 유지하며 사용할 수 있다. 바락 이사는 "전통적 담수관개의 물 효율은 40∼60%, 스프링클러 관개는 70∼85%인 데 비해 점적관개는 90∼95%이다"며 "점적관수가 이스라엘에 그린혁명(Green Revolution)을 가져왔다"고 했다.

점적관수를 개발한 것은 심카 블라스라는 이스라엘 수자원공사 최고 기술자였다. 그는 이웃집 마당에서 물을 주지 않는데도 크게 자란 나무를 보고 우연히 점적관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웃집 지하마당에 매설된 용수공급 파이프에 문제가 생겨 물이 조금씩 새어 나왔고, 이 물이 땅속으로 넓게 퍼지면서 주변 나무들에 수분을 공급했던 것. 우연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연구개발을 거듭한 끝에 네타핌의 독자적인 점적관수 시스템을 완성했다.

네타핌 관개방식의 핵심인 드리플(파이프에 뚫린 구멍의 내부에 설치된 조절 장치)은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다. 컴퓨터를 이용해 많은 수학적 연산수칙을 사용하고 있으며 압축 보상방식으로 작동해 밸브로부터의 거리에 상관없이 균등한 양의 물을 줄 수 있다. 물뿐 아니라 비료와 양분도 이 조절시스템으로 식물에 공급할 수 있다. 네타핌은 점적관수를 포함한 온실기술, 작물관리 솔루션을 전 세계 110개국에 보급하며, 연 8억1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적대적 관계에 있는 아랍국가들에도 '메이드 인 이스라엘' 표시를 떼고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네타핌 마크가 붙어 있는 호스를 찾아볼 수 있다.

◆'티쿤 올람'

네타핌은 본사에 350여 명, 전 세계에 4천500여 명의 직원을 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다. 바락 이사가 안내한 조조바(화장품을 만드는 식물) 농장 방문을 통해 네타핌의 성장 비결을 확인했다. "우리에겐 두 가지 문화가 있어요. 하나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도해서 안 되면 또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사막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점적관수를 통해 조조바는 물론 감자, 사탕수수, 담배, 카카오, 차, 커피 등을 재배하고 있다. 망고, 아보카도, 아몬드, 오렌지 등 고가 과일 재배에 점적관수를 활용하고 있다.

네타핌 곳곳에는 'GROW MORE WITH LESS'(적은 양으로 더 많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바락 이사는 "이것이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유지해온 우리의 유일한 모토"라며 "적은 양의 물, 적은 양의 땅을 사용해 더 많은 수확을 얻는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린혁명'에 성공한 네타핌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바락 이사는 "12개월에 걸친 연구 끝에 점적관수로 쌀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며 "사막에 점적관수 시스템을 설치, 쌀을 생산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했다. 이어 '세상을 고친다'는 뜻의 히브리어 '티쿤 올람' 얘기를 했다. 신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했지만 미완성의 상태로 두었고, 인간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인 세상을 위해 끊임없는 창조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 그의 말을 들으며 네타핌을 만든 원동력은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근성과 끈기,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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