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리와 울림] 진실한 사람

연세대(독문과)·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철학박사) 졸업. 전 계명대 총장
연세대(독문과)·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철학박사) 졸업. 전 계명대 총장

헷갈리는 '진실한 사람' 정치적 해석

정책보다 충성 다하는 인물인가

민주주의 공약에 충실한 사람이냐

말장난에 현혹되지 말고 선택해야

언어가 춤을 추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사실 그 기반이 상당히 약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떻게 지내세요?" 이런 인사말에 건네는 대답도 대개 일정하다. "예,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기분이 나쁜지 이렇게 되물으면 어떨까? "잘 지내느냐고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의 재정 상태, 건강 상태, 아니면 심리 상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런 상황에 처하면 난감하고 곤혹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이렇게 공감과 합의라는 취약한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이런 토대가 흔들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려한다.

나라가 안팎으로 요동을 치는 요즘, 언어가 춤을 추고 있다. 북한의 핵도발로 중국제국과 미국제국의 '신(新)냉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고 하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어떤 경제정책도 먹혀들지 않는 저성장, 저소비, 고위험, 고실업의 비정상 상태가 계속되는 '뉴 노멀'(New Normal) 경제 질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비정상 상태가 '새로운 정상'으로 불리고, 세계화 시대에 냉전체제라는 말이 난무하니 언어가 정말 춤을 추고 있는 격이다.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에 우리는 국민을 대변하여 이 나라를 이끌고 갈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정책은 별로 보이지 않고 의미 없는 언어의 춤판만 펼쳐지고 있다. 우리를 가장 헷갈리게 하는 말은 '진실한 사람'이다. "앞으로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한다"는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의 말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말을 둘러싼 수많은 추측과 해석은 또 다른 알 수 없는 말들을 낳았다.

무슨 뜻일까? 사전을 들춰보면 '진실하다'는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르다'는 뜻이니 진실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일컫는다. 거리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맞추면 진실하다는 것은 대충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정도일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믿음이 가는 진실한 사람이다. 이렇게 간단한 뜻을 가진 말이 정치적 발언 하나로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약속인가 아니면 공익에 대한 약속인가?

최고 권력자의 말은 그 자체가 정치행위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말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옳다.

누가 정치적으로 '진실한 사람'인가? 논란의 핵심을 뚫고 들어가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인물 중심적 해석이다. 발언자의 뜻풀이에 의하면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라 한다. 알 듯 모를 듯한 이 말의 뜻을 분명하게 밝혀준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은 하나의 명료한 명제로 서술될 수 있다. "헌법 위에 사람관계가 우선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진실한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충성스럽고 정직한 사람"을 뜻한다. 자신을 충직하게 따르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충복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펼치는지 따지지 않는다. 따지지 않고 따르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상호신뢰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에 적합한 인물인지는 의문이다.

다른 하나는 원칙 중심적 해석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진실한 정치인은 공익에 충실한 사람이다. 사람이 지배하는 정치가 독재라면,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정치가 민주주의이다. 냉전체제를 배경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근 영화 는 민주주의의 강점을 잘 말해준다. "독일계인 당신과 아일랜드계인 내가 미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누구에게나 변론의 기회를 부여하는 헌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충직하기보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진실한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체제 경쟁에서 이겨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진실한 정치인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말장난에 현혹되지 말고 진실하게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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