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조평규 중국 옌다그룹 수석 부회장

"중국은 우리의 내수시장…대륙 진룰, 선택의 문제 아냐"

▷1956년 경남 통영 출생 ▷고졸 검정고시 ▷경북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서강대 경영학 석
▷1956년 경남 통영 출생 ▷고졸 검정고시 ▷경북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서강대 경영학 석'박사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근무 ▷중국 베이징크리스탈생수유한공사 사장 ▷재중 한국인회 수석 부회장 ▷한중기업연합회 상근 부회장 ▷단국대 석좌교수(현) ▷중국 옌다그룹(燕達集團) 수석 부회장(현)

"사람이 위대한 것은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조평규(59) 중국 옌다그룹(燕達集團) 수석 부회장은 큰 꿈으로 목표를 세운 뒤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교 진학을 하지 못한 그는 공장에 다니면서 훗날 반드시 석'박사 학위를 따겠다는 꿈을 꿨고, 결국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졸업 20년 만에 석사학위를, 다시 12년 만에 박사학위를 거머쥐었다.

그는 한중 수교(1992년) 전인 1987년 중국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꿈을 꿨고, 20년 만에 허베이성(河北省) 최대 민간기업의 2인자로 '차이나 드림'을 실현했다.

하지만 그의 꿈과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단국대 석좌교수, 중국 장강상학원 한국캠퍼스 지도교수이면서도 지난해 장강상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에 다시 들어가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광둥성 광저우에 의료와 바이오를 접목한 한중합작 스타트업 기업을 별도로 설립, 또 다른 성공신화를 꿈꾸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내수시장이다' '중국에 가서 네 꿈을 펼쳐라' 등 중국 관련 베스트셀러 5권을 내고도 앞으로 매년 1권씩 단행본 20권 발간을 목표로 글쓰기에도 여념이 없다.

현재 대학을 졸업한 쌍둥이 두 딸에게 어릴 적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아침마다 애국가를 부르도록 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서울과 중국을 오가며 그칠 줄 모르는 꿈과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조 부회장으로부터 그의 꿈과 성공신화를 들어봤다.

◆실패, 또 실패

중학교 입학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속히 기울자, 조 부회장은 고향에서 리어카에 우물물을 담아 식당, 빵집 등지로 배달하는 '물장수'로 학비를 충당했다. 중학교를 근근이 졸업한 뒤 부산의 전기재료 공장, 중장비 조수, 자동차정비공장 등지를 전전했다. 돈벌이를 했지만, 학업에 대한 목마름은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이후 국내 은행에 취업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만족하지 않고, 4년 6개월 만인 1987년 중국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이 우리의 큰 이웃이자, 머지않아 가장 밀접한 교역국이 될 것을 감지하고 '차이나 드림'을 꾼 것이다.

처음에는 공예품 등을 싸게 수입해 국내에 판매했다. 그러나 곳곳에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다. 수교 전이라 최장 체류기간이 한 달에 불과한 데다 제품의 질, 납기일, 결제조건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번번이 실패였다.

빚을 내거나 주변에 돈을 빌려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실패 후 사업을 재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국내 중소기업에서 2년가량 일해 번 돈으로 다시 무역을 하고, 실패하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 사업 밑천을 마련하는 방식을 되풀이했다.

이렇게 쌓은 경험은 1993년 매형 회사가 인수한 중국 법인의 대표로 가면서 더욱 탄탄해졌다. 베이징의 생수회사였다. 이때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중국에 들어갔다. 6년 동안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IMF 금융위기로 99년 회사를 중국으로 넘기면서 다시 국내로 들어와야 했다.

IMF 극복 이후 중국 투자가 봇물을 이루면서 그는 그동안의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자문회사를 운영하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차이나 드림

중국 투자자문회사 운영, 허베이성 싼허시(三河市) 경제고문 등 2008년 중국통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허베이성의 최대 기업인 옌다그룹이 싼허시 등지의 대규모 개발을 위해 국제감각을 갖춘 경영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싼허시의 당서기는 조 부회장의 경영감각과 인적 네트워크를 높이 평가해 옌다그룹 회장에게 소개했다. 국내외 쟁쟁한 임원 후보 10여 명에 대해 비토를 놓았던 회장은 면접 30분 만에 그를 스카우트했다. 조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한 이후 옌다그룹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대규모 종합병원을 비롯한 실버타운, 의학연구소, 호텔 건립을 주도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특히 2008년부터 싼허시를 베이징의 위성도시로 건설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 구도심이 상당 부분 정비되면서 시내 집값이 폭등했고, 상당수 주민이 베이징공항에서 20㎞ 떨어진 싼허시로 옮길 무렵이었다. 바로 이곳에 한국형 신도시인 '서울타운'을 건설하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는 그룹 회장과 함께 분당, 일산, 송도 등 국내 신도시를 돌며 친환경, 저탄소 등 장점만 뽑아내 서울타운에 적용했다. 청계천을 모방해 인공 개천을 꾸미고, 첨단산업과 연구개발센터를 유치하고, 병원'쇼핑몰'문화'교육 등을 충족하는 자족도시를 조성했다. 이 서울타운은 올해 완공도 되기 전 이미 분양이 끝났고,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옌다그룹의 연 매출은 그가 입사할 당시보다 20배 이상 성장했다. 그가 성공리에 조성한 서울타운과 실버타운 '금강성'은 중국 주요 거점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미래를 이야기하라

조 부회장은 한중 관계의 밀접함과 미래를 중요시하는 중국을 강변했다.

그는 "중국시장 진출은 시기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고 단언했다. 국내 시장에 한계가 있는 우리는 수출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 수출은 저임금과 방대한 시장의 중국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바로 우리의 내수시장'인 셈이다.

또 중국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항상 미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미래 전략산업은 무엇이 될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한다며 중국의 '미래지향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중국 리커창 총리가 주창한 '인터넷 플러스(+)'에 주목했다. 중국은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 산업 등에서 우리보다 앞서 약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경우 한국의 IT서비스를 겸하면 중국의 인프라를 통해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 지식 등을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一帶)와 동남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뜻하는 말로,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순방에서 처음 내놓은 전략이다.

중국 꽌시(關係) 문화를 잘 활용할 것도 권유했다.

그는 "꽌시는 가족을 중심으로 친척, 친구 등 동심원 식으로 퍼져 나가는 것으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 속에 깊숙이 내재돼 있는 문화구조 자체"라고 말했다. 또 "우정은 양도가 되지 않지만, 꽌시는 제3자에 양도가 된다"고도 했다. 이어 "과거에는 꽌시를 이용해 사업권을 따낼 정도였고, 지금도 사업을 비롯해 경쟁상황에서 2% 부족할 경우 꽌시의 파괴력이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투자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언급하면서 특히 공무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1960, 70년대 공무원은 외자유치에 목숨을 걸었는데, 지금은 '먼 산의 불 보듯' 한다"며 " 중국은 정부 승인 없는 자발적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외자유치는 우리 공무원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구 기자 kbg@msnet.co.kr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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