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보수와 고집

요즘 전국은 온통 총선을 앞두고 선거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경북이 전국의 관심을 요즘처럼 받을 때도 없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총선 결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구 시민이 어떤 결정을 할지 전국이 주목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각종 '박' 논쟁을 벌이며, 나뉘어 혈투를 벌이고 있다. 세상 정치와 멀리 있는 목회자의 눈으로 바라봐도 너무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가 진행되고 있어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국민은 진박이니 비박이니 친박이니에 관심이 없다. 비본질에 목숨을 거는 그들이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오히려 본질인 그들이 과연 국민과 지역을 위해 얼마나 헌신된 일꾼인가 하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향해 이런 행태가 더욱더 '보수' '수구' '꼴통'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될까 두렵다. 보수라는 말은 결코 나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좋지 않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라는 단어는 정말 좋은 것을 지키며 본래의 좋은 모습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반면에 고집이라는 말은 좋고 나쁜 경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최고로 생각하고 강하게 내세우며 우기는 융통성 없는 버팀을 의미한다.

잘못된 고집은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계층과 그룹에서 나타난다. 이 고집은 조직을 발전시키기는커녕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모두를 힘들게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결국은 망하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자기가 아는 것과 자기가 아는 사람과 자기가 해왔던 것들만을 최고로 생각하여 도무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우리 자신이 이런 고집의 중심에 서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변하지 않으나 물을 마시는 도구나 방법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비본질적인 보수는 결국 고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좋은 것은 보존하며 지켜나가야 한다. 귀중하고 중요한 본질은 본래 그대로 보존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과 나쁜 것, 좋지 못한 것에 보수할 필요는 없다. 필자 역시 주변에서 보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조금도 비본질에 고집을 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는 싫다.

특히 분명히 잘못된 고집인데도 보수라고 미화하고, 보수를 고집이라고 짓밟아 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본질에 있어서는 좋은 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보수를, 비본질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장보다 남의 입장과 대의를 생각하는 융통성과 어울림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고집을 보수라고 착각하고, 보수를 고집이라고 짓밟아 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선대의 아름다운 정신과 헌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이것이 보수이다. 그러나 무조건 자신이 해 오던 것을 맹신하며 자신의 의견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고집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진정한 합리적인 보수를 찾기가 힘들다. 자기의 소신이 있지만 무조건적인 고집을 피우지 않고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전체를 생각하는 멋있는 보수가 그립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의 전설로 불리는 하워드 스티븐슨의 '하워드의 선물'이란 책이 있다. 그는 그 책에서 "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에, 세상은 전환점이라는 선물을 숨겨놓았다. 그걸 기회로 만들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인생의 고집은 후회 있는 인생을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 보수는 자신이 지켜온 삶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낄 것이다. 이번 선거가 우리 모든 독자들에게 고집에서 보수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 우리 지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해 본다. 나는 고집불통 목사가 아닌 멋진 보수 목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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