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사 설명 못 하는 인문학 '교양과학'이 필요한 이유…『과학기술과 사회』

고전 인문학자 대부분 진화론 이전 시대…생명의 연속성보다 인간 특권·지위 강조

과학기술과 사회/ 홍성욱 등 지음/ 나무나무 펴냄

인문학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중년 직장인이나 사업가들뿐만 아니라, 초·중학생 사이에서도 인문학적 지식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공자나 맹자, 노자, 순자와 같은 동양의 선현들로부터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스스로 적극적인 삶을 살았던 스피노자나 니체를 읽으면서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교양인문학'을 강조하는 데는 '인간의 본성 혹은 본질은 거의 변화지 않는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2천500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든, 17세기 유럽을 살았든, 아니면 지금 현대를 살고 있든 간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속성이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다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삶과 가치를 성찰한 고전은, 비록 그것이 수천 년 전에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생생한 울림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해 고전은 인간의 본성과 삶의 가치에 대한 변치 않는 진실을 포착했다는 것이 '교양인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의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인문학은 설명해 주지 못하는 탓이다. 이들은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인문학자들 대부분은 진화론이나 빅뱅 이론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살았고, 그래서 인간과 동물 같은 다른 생명체들의 연속성보다는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강조했으며,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과장했다고 비판한다. 많은 인문학 고전들은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인문학 고전들은 기후변화와 인류세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장에 귀 기울여 보자.

"내가 컴퓨터 없이 글을 쓸 수 없다면,

컴퓨터는 이미 내 마음의 일부가 된 것이다.

내가 전기 에너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면,

전기 에너지는 나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 기술 사회에 대한 이해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

이제는 교양인문학이 아니라, '과학이 교양'인 '교양과학'의 시대라는 설명이다. 교양과학 옹호론자들은 변화를 강조한다. 인간의 DNA나 두개골의 크기는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통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부수적인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기술과 사회'(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를 연구하는 저자들은 "인간은 외부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외부 세상을 바꾼다. 바뀐 지식과 세계는 인간을 바꾼다"고 말한다. 나라는 한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은 내 피부가 만든 3차원의 경계 안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내가 맺는 관계의 총합이라는 의미이다. 그 관계 중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나 권력관계도 있지만,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도 존재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양과학은 교양인문학과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다. 이 책은 과학기술의 여러 특징들(합리성, 객관성, 생산력, 신무기의 원천으로서의 과학지식 등)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과학과 사회, 과학과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1부에서는 세계를 변형하고 새롭게 만드는 작업의 출발점인 실험과 실험실에 대해 논의를 하고, 2부에서는 과학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과학 방법론의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한다. 3부에서는 과학이 만들어 낸 사실과 이론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꾼다는 것을 보여주고, 4부에서는 과학기술이 낳은 위험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 주제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 확장하고 정착시키는 데 꼭 고려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과학과 인문학이 (그리고 바람직하게는 예술이) 겹창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역할을 할 때, 과학이나 인문학 하나로 보는 것보다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504쪽, 2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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