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시나요 할랄?] 18억 이슬람 시장 "군침 도네"

지난 설 연휴 기간 대구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 중 하나는 이슬람 문화인 '할랄'(Halal'허용)이었다. 대구시가 이달 4일 '한국형 할랄 6차산업 육성'에 나서겠다고 밝힌 게 계기였다. 이슬람 율법이 허용하는 방식으로 농산물을 '재배(1차)+가공(2차)+판매(3차)'해서 무슬림 시장을 개척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대구시는 일주일 만에 사업 철회를 선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할랄 사업이 추진되면 무슬림이 대거 유입된다'는 등 반대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대구시 담당 부서는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됐다.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에서 할랄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크게 높아졌다. 결과적으로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 된 셈이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할랄 산업에 대해 알아봤다. 할랄이 무엇이며, 세계 할랄 시장 규모를 살펴보고,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도 알아본다. 이상헌 기자 davai@msnet.co.kr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권모(49) 씨는 중동 바이어들이 방문할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이들이 할랄 음식만 고집해서다. 갖가지 진미가 차려진 한정식 식당에서 생선, 채소류만 먹거나 아예 수입 할랄 식품으로 버티려 하는 경우도 있다. 권씨는 "양고기를 먹은 뒤 소스에 와인이 들어간 사실을 안 바이어가 나중에 음식을 게워내는 일도 있었다"며 "무슬림 손님 접대가 고민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할랄이 무엇이기에 이들은 할랄 음식 외에는 먹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허용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되지 않은 고기와 목 졸라 죽인 것과 때려서 잡은 것과 떨어져서 죽은 것과 서로 싸워서 죽은 것과 다른 동물이 일부를 먹어버린 나머지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것과 화살에 내기를 걸고 잡은 것이니, 이것들은 불결한 것이니라."(코란 5장 3절)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할랄 제품을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이슬람교도가 안심하고 섭취'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식품을 주로 의미한다. 의약품'화장품 및 관광'물류'금융 등 각종 서비스도 해당된다. 쉽게 말해 무슬림으로서 올바른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식품의 경우 과일'채소'곡류 등 식물성 음식, 어패류 등 해산물, 소'닭'양'염소'낙타'토끼 등이 할랄에 포함된다. 특히 육류는 가장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식품군이다. 다만, 코란은 "알지 못하여 금지된 것을 먹었을 경우에는 죄악이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할랄의 반대말은 하람(Haram'허용되지 않은)이다. 돼지고기가 대표적이다. 음료'과자 등의 제품에 돼지 성분이 섞여서도 안 된다. 힌두교에서 소를 신성하게 여겨서 먹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다. 이 밖에 ▷개'호랑이'곰'뱀처럼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가진 포유류, 맹금류 ▷쥐'지네'전갈 등 해충 ▷개구리'악어 등 양서류 ▷노새'당나귀 ▷개미'벌'딱따구리 등 율법에서 살생을 금지한 동물 ▷상어'돌고래'바다거북'장어 등의 수생 동물도 하람이다.

이런 짐승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가공식품이나 알코올이 들어간 화장품, 의약품도 하람에 해당한다. 돼지고기를 썬 칼로 할랄 식품을 다듬어서도 안 되고, 하람으로 규정된 짐승의 가죽'털이 섞인 의류나 피혁제품도 무슬림은 피해야 한다.

◆할랄 식품을 둘러싼 논란

세계 각국이 할랄 산업에 주목하는 것은 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할랄 식품 시장만 하더라도 2012년 1조880억달러에서 2018년 1조6천260억달러로 6년 만에 49.4% 커진다는 게 시장조사 전문업체 '톰슨 로이터'의 추산이다. 우리 정부도 전년 대비 31% 증가한 11억달러어치의 할랄 식품 수출을 올해 목표로 하고 있다.

가파른 성장세는 18억 명에 이르는 이슬람 경제권이 탄탄한 데다 높은 출산율, 소비 고급화가 이어진 덕분이다. 여기에다 '건강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리되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비이슬람 국가에서도 할랄 식품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중동 순방에서 "할랄 음식은 공정이 엄격하고 식재료가 깨끗하게 관리돼서 웰빙 바람을 타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실제로 할랄 식품 소비량 상위 국가(2013년 기준)에는 인도네시아'터키'파키스탄'이란'이집트가 1~5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외의 국가들도 많다. 러시아(8위), 미국(18위), 프랑스(20위), 중국(22위), 독일(23위) 등이다. 또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 국가들이 2013년 수입한 축산물 150억달러어치 가운데 85% 이상은 브라질, 호주, 미국 등 비이슬람 국가로부터 수입됐다.

'할랄 음식=종교 음식'이란 오해는 독특한 도축 방식에 기인한다. 가축의 다리를 묶어 성지 쪽으로 머리를 놓고 '비쓰밀라 알라 후 아크바르'(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뒤 단칼에 목을 친다. 동물의 고통이 극대화된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동물보호법 위반 논란이 벌어진 배경이다. 이와 관련, 할랄 식품 전문가인 이희열(54) 세종사이버대 외식산업프랜차이즈학과 교수는 "이슬람 방식은 오히려 동물에게 가장 적은 고통을 주는 배려라고 볼 수도 있다"며 "문화별 차이일 뿐 잔인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물론 할랄 방식으로 도축된 육류의 맛은 그렇지 않은 고기와 차이가 없다. 무슬림이 율법대로 도축했느냐가 할랄의 주된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할랄 인증을 받은 도축장도 아직 없다. 이 때문에 가짜 할랄 인증마크를 부착해 유통하다가 단속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무슬림이 많이 먹는 닭고기는 무슬림 도축사가 일반 도계장을 잠시 빌려 간헐적으로 도계하는 실정이다.

◆인증은 어떻게?

많은 기업이 이 같은 거대 시장을 노리고 할랄 산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난관은 적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전문기관의 인증이다. 재료를 준비하고 가공하는 모든 과정에서 엄격하고 까다로운 규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를 증명하는 수십 종의 서류도 제출해야 한다.

할랄 인증기관은 세계적으로 300여 곳이 있다. 기관별로 다른 인증마크가 발급된다. 하지만 공통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 종파별, 학파별로 율법 해석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다. 이에 따라 국제적 표준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할랄 인증을 처음 시작한 곳은 이슬람의 본산인 중동이나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별다른 인증이 필요 없었지만 비이슬람 사회에서는 '차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국이슬람식품영양협회(IFANCA)는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기관으로 꼽힌다.

말레이시아의 '자킴'(JAKIM), 인도네시아의 '무이'(MUI), 싱가포르 '무이스'(MUIS) 등도 영향력이 큰 인증기관이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표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가 유일한 할랄 인증기관이다.

할랄 인증은 이슬람권 진출에 필요한 요소이지만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 경쟁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국내 기업 가운데도 나라마다 다른 음식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인증만 받았다가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희열 교수는 "이슬람 종교, 사회, 문화 등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비용 면에서는 국내 인증이 해외 인증보다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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