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들은 그동안 세계의 수많은 사람을 공분하게 만들었다. 역사 속 현장의 끔찍하고 잔혹했던 실상이 영화라는 장르로 재현돼 전쟁범죄 청산의 의의를 더욱 보편타당한 숙명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역사서의 서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개인이 놓인 시대적 배경을 기반으로 자연스레 좇아가게 되는 영화 속 이야기는, 관객이 감동을 얻는 것과 더불어 관객을 주인공에 대한 관찰자로 삼는 감독의 의도에 동조하게 만든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오롯이 품게 한다.
그리고 우리도 드디어 만들었다. 전쟁범죄를 제대로 다루는 영화 한 편을! 바로 최근 개봉한 '귀향'이다.
영화의 개봉 시기는 마침 1997년 대구의 최봉태 변호사가 주축이 돼 만든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20주년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대구에서 그저 몇 자루의 촛불로 출발한 이 모임은 해를 거듭하며 대구에서 서울로, 그리고 전국으로, 마침내 세계인들에게 전범 관련 인권 문제의 커다란 이슈로 조명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의 만행을 고발한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저질러졌던 위안부의 끔찍한 실상을 공분과 눈물로써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 작업을 주도한 조정래 감독은 대구 출신이다. 식민지 과거사 관련 소송 전문 최봉태 변호사와는 고교 동문이다. 조정래 감독이 최봉태 변호사의 11년 후배다. 기막힌 인연이다.
영화 '귀향'의 주인공 정민이는 불과 14세에 불과하다. 정민이와 정민이의 이야기는 조정래 감독이 지난 2002년 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만난 강일출 할머니와 할머니가 겪은 실화가 바탕이 됐다. 1943년 14세의 나이로 끌려간 이 소녀는 요즘으로 따지면 중학교 1학년 여중생인 셈이다. 꽃보다 여린 아이들이었다.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한 지 14년 만에 뜻을 이뤘다. 그동안 투자자들이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외면의 첫 번째 이유는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은 7만5천 명의 개미 투자자가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는 지난 2월 28일 마침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좋은 영화는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속설을 여지없이 날려버린 것이다. 대구에서 시작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시민모임'은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를 관람한 수많은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발판을 든든하게 짜놓을 수 있게 됐다. 영화는 정민이의 나이와 비슷한 15세 관람 가능 영화다. 온 가족이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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