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룸

7년 만에 방 탈출한 母子, 진짜 세상 속으로

#방 안에서 품은 희망'방 밖에서 만난 벽

#충격 실화에 묻히지 않고 담담히 그려

#브리 라슨,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며칠 전 막을 내린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엄마 역을 맡은 할리우드의 젊은 여배우 브리 라슨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다. 배우와 가수를 겸업하는 브리 라슨은 '룸'에서의 연기로 미국 내에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연기상을 휩쓸었고, 아카데미 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이변이 없는 한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올해에는 유독 성폭력과 관련된 영화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SF영화 '매드맥스'에서부터 실화를 다룬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현재 예상외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영화 '귀향'까지. 이 중에서도 '룸'은 단연 충격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원작은 아일랜드 출신의 인기작가 엠마 도노휴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던 충격적인 밀실 감금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구성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원작자가 영화의 각색을 직접 맡았다. 연출은 같은 아일랜드 출신인 '프랭크'(2013)의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각색상과 감독상, 작품상에 모두 후보로 올랐다.

저예산의 작은 영화이고, 출연자의 수가 매우 적다. 엄마와 어린 아들이 이야기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이 사회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에서는 주제가 '가족'으로 전환되며 가족 구성원 몇 명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영화는 낡은 침대와 세면대, 변기, 탁자, 조그만 햇빛이 통하는 천장의 창이 전부인 작은 방에서 태어난 다섯 살 소년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하루 종일 울며 지내던 엄마는 하늘에서 선물로 내가 오고 나서 눈물을 멈췄다"라고 시작하는 잭의 목소리는 밝고 사랑스러우며, 카메라는 아기자기한 작은 방을 훑는다. 사랑스러운 모자의 대사가 펼쳐지며 전개되는 장면이 거듭되면서, 이들이 실은 방에 감금되어 있다는 점이 감지된다. 여성이 어떤 범죄자의 성 노예가 되어 아이를 힘겹게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분위기는 범죄사건의 미스터리와 모자 가족의 애틋한 드라마를 오간다.

실제 사건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므로, 영화가 이들의 탈출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영화는 기구한 그녀의 인생 역정과 나락에서 솟아오른 성공담을 담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다른 길을 택한다. 절망만이 숨 쉬는 꽉 막힌 세상에 갇힌 모자가 어떻게 하여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그리고 진짜 세상을 만난 적이 없는 소년이 세상으로 내던져져 어떻게 자신을 단단하게 세워나가는지. 이 모든 것들이 경이롭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인간에 대한 분노와 공포, 그리고 더불어 인간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희망과 감동이 뒤범벅된 것이다.

실화는 더 끔찍하다. 피해자 여성은 24년간 친아버지에 의해 지하 밀실에 갇혀 그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영화는 소재의 자극성을 지워내도록 실화를 변경하였다. 열아홉 살에 납치되어 7년간 작은 방에 갇혀 사는 엄마 조이는 다섯 살 난 아들 잭에게서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구원을 본다. 잔악한 범죄의 결과로 태어난 잭은 갇힌 방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방의 모든 것을 친구로 여기며 살아간다.

룸에 갇힌 동안에도 두 사람의 인생은 있었고, 눈물과 함께 웃음이 있었다. 룸에서 벗어난 후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 무너지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원망, 아들을 구원의 도구로 삼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조이의 몸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진짜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기가 힘겹다.

영화는 절망 속에서 간직한 희망이 일으키는 무한대의 기적과 세상이라는 커다란 벽을 여전히 깨부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 그리고 그 안에서 맛보게 되는 작은 행복감 등 많은 것을 전한다. 신파로 떨어지지 않는 담담한 연출력이 훌륭하며, 브리 라슨의 과장되지 않은 깊이 있는 연기는 올해 최고의 배우로 등극하기에 손색이 없다. 다섯 살 잭을 연기한 꼬마 연기자 제이콥 트렘블레이도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올랐어야 했다. 그의 순진무구한 목소리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오래도록 귓가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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