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은 말한다. "내가 살아온 삶은 소설책으로 엮으면 두 권은 나올 것"이라고. 그러나 막상 삶을 써보라고 하면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분이나 될지는 물음표로 남겨둔다.
나의 친구들은 글을 쓸 일이 생기면 평소 전화가 뜸하다가도 바로 전화가 온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무턱대고 당장 글 좀 써 달라고 재촉한다. 그 내용은 자기소개서, 자기가 운영하는 업체의 소개서와 운영 방침, 인사말, 단체의 수상을 위한 공적 조서 등 다양하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전화한다는 것이고, 자기가 쓰고 싶은 말의 초안은 없고 무조건 내게 맡기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의 글 부탁을 받을 때마다 다 써주지는 않는다. 가령 네가 ○○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한 노력과 일련의 활동을 써보라고 한다. '성실하게 생활했고'라는 말을 기술했을 때 어떤 성실한 생활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어보라고 한다. 그러면 어릴 때부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잘 돌보았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다,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에 쉼 없이 참가했다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것이 정리가 되면 나는 친구들이 쓴 글을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글의 군더더기를 지워낸다. 콘셉트에 맞게 묶어 대표적인 단어와 문장을 찾아준다. 그리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어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내가 글을 써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리되지 않은 개인사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불과하다.
디지털 시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양해졌고 나를 보는 눈도 많아졌다. 아날로그 시대보다 글쓰기의 중요성이 덜해지고 단문과 영상, 이모티콘으로 글쓰기가 대체되었다. 나를 깊이 이해하는 지기(知己)를 얻기도 어렵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고 살 때가 많다.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높은 문턱의 취업 문제 때문에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특강도 개설되고 인터넷에 잘 쓴 예제가 게시되어 있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소개서를 사고팔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는 취업준비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중간 평가 차원에서 자기소개서를 써보는 것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으며 앞으로 삶을 설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바로 '나'이다. 매일 마음을 열어 1분의 여유를 갖고 날씨와 풍경, 사물, 사람에 대해 한 줄 감상평으로라도 내 삶의 하루에 대한 소개를 남겨보길 바란다.
글을 쓰는 것은 정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다. 옛 사람의 다독, 다상량, 다작이라는 나침반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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