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속에 묵혀둔 이야기를 털어놓는 '토크 프로그램'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들은 부모나 형제,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고맙고 미안하고 애틋한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시청자들도 그런 모습을 통해 그들의 이면을 새삼 발견하곤 한다. 이처럼 '가족'은 누구에게나 신성불가침의 존재이고 우리는 의심없이 그렇게 배워왔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가치관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잦다. 과연 우리 시대 가족은 무엇일까. 지난 2일 하루 새 대구에서 2건의 살인 사건이 터졌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가족 살해'였다. 이날 오후 11시 23분쯤 대구 서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모녀가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는 다름 아닌 가장 A(48) 씨로 추정된다. A씨는 이에 앞서 오후 9시쯤 강원도 원주의 한 병원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오전에 정선의 한 도로에서 차량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지만 행인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끝내 그는 투신자살로 죽음을 선택했다. 경찰은 A씨가 도박에 빠져 빚을 많이 졌고 이로 인한 가정 불화 등을 동기로 파악했다.
같은 날 오전 4시쯤에는 동구의 한 주택에서 30대 여성이 잠을 자고 있던 딸(11)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여성은 이혼 후 2년 전부터 동거를 시작하면서 지적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기 어려워지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일에는 경기도 부천 한 주택에서 목사 아버지의 폭행으로 숨진 지 1년가량 지난 백골 상태의 여중생이 발견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에는 아버지가 숨진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보관해오다 경찰에 적발돼 세상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가족 살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정성국 박사의 '한국의 존속 살해와 자식 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존속 살해(자녀의 부모 살해)는 모두 381건, 자식 살해(부모의 자녀 살해)는 230건에 달했다. 특히 자식 살해의 경우, '동반 자살'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전체 살인 중 친족 살해(친'인척 간 살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21.3%나 된다. 5건 중 1건꼴이다. 다른 나라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가정 불화'와 '경제 문제' 등이 꼽힌다. 또한 자식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과 가정폭력 등도 원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사회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인식 문제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은 비참하게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는 게 낫다고 부추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은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부담을 홀로 떠맡아야 한다. 그런 역할이 부족하면 어김없이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에 시달린다.
일본 NHK 아나운서 출신인 시모주 아키코는 지난해 '가족이라는 병'이라는 책을 펴내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책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단위를 싫어한다"고 밝히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아버지에 실망했고, 그런 아버지 곁에 머물며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그녀가 가족을 이해하기도 전에 부모는 각각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책을 통해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반박한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존중과 사랑보다 책임감과 고정관념으로만 가족을 대하지는 않았을까. 가족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열린 사고'로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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