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리와 울림] 정당 국고보조금을 없애자

서울공고·경희대(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전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서울공고·경희대(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전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자발적 조직인 정당이 당비 해결 못 해

올해 선거보조금 포함 800억원 지원

공짜 돈 넘쳐나 정치 본질 흐리고 있어

직접 후원금 모아야 여론에 반응할 것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 사전에 나오는 정당의 정의이다. 정당법에서 규정한 정당의 정의는 이렇다.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정당법 제2조)

종합하면 정당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정치적 이상 실현이라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정권을 잡으려는 목표가 필요하다.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해야 한다.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하거나 지지한다.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우리 정당의 실제 모습은 이론과 거리가 멀다. 도저히 같은 정당 소속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한 지붕에서 활동한다. 사안마다 계파별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정치적 이상 실현 대신 자신의 당선만이 유일한 관심사이다. 당선에 도움이 된다면 무책임한 공약 남발이나 아니면 말고 식 주장을 서슴없이 펼친다. 국민의 이익은 도외시한 채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한다.

최근의 선거법 처리 사태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회는 우여곡절 끝에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사상 초유의 '선거구 실종' 사태가 도래한 지 62일 만이다. 총선을 불과 42일 앞두고 선거구가 정해진 것이다. 국민주권주의의 통로로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에 큰 오점이 생긴 것이다. 현역의원들과 신인들 간의 형평성 논란은 물론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도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

선거법 처리 지연 사유를 물어본다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거대 정당 간의 담합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쓸모없는 정치 행위에 몰두하는 정당들의 행태가 있고, 이런 불필요한 정치 행태를 부추기는 정당보조금이 있다고 할 것이다.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모두 394억원을 경상보조금 명목으로 정당에 지급했다. 올해는 선거보조금을 포함, 약 800억원이 정당에 지급된다. 이처럼 세금이 정당에 지급되는 것은 '자발적 조직'이라는 정당의 개념에 맞지 않다. 자발적 조직이라면 당연히 회원(당원)들이 회비(당비)로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 거액의 눈먼 돈은 정치의 본질이 아닌, 쓸모없는 정치 행위를 부추기게 된다. 공짜 돈이 넘쳐나다 보니 거대 정당들은 불필요한 중앙당을 유지하고 아침마다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앞에서 보다시피 정당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공직선거의 후보자 추천'이다. 공천이 그것이다.

하지만 거대 조직을 운영하는 정당이 잡음 없이 공직선거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외부인을 칼잡이로 모셔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당 운영마저 당외 인사에게 완전히 맡겨버린 사태까지 생겼다. 이런 문제의 상당 부분이 공짜 돈이요, 눈먼 돈인 국고보조금을 정당에 지급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얼마 전 헌재는 정당후원금 모금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고보조금 문제를 이와 연결해 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 정당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반대급부로, 국고보조금을 완전히 폐지하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혹은 후원금 액수와 비례하여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이른바 매칭펀드 방식)

어떤 식이든 이렇게 바꿀 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론에 반응하는 정당과 정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후원금을 모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정당이 국민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할 필요나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아무리 여론이 기득권 담합 구조 타파를 외쳐봐야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정치의 많은 문제도 정당과 돈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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