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칼레 이야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가장 좁은 해협 이름은? 누구나 도버(Dover)해협이라 할 것이다. 100% 정답은 아니다. 영국의 명칭일 뿐, 프랑스는 칼레(Calais)해협이라 부른다. 도버와 칼레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작은 도시다. 거리는 34㎞. 두 나라는 한국과 일본처럼 동해·일본해 명칭을 놓고 다투지 않는다. 따로 부를 뿐이다. 1986년 해저터널 협정 당시 영국·프랑스가 사용한 공식 명칭은 채널(Channel'해협)이다.

칼레는 역사책에 자주 나오는 지명이다.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의 최단거리 지점이어서 전쟁·교역 루트로 빈번하게 이용됐다. 기원전 55년 카이사르가 로마군을 이끌고 브리타니아로 건너간 시발점이었고, 1588년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칼레해전'의 결전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V1로켓을 발사한 장소였고, 1982년 고 조오련 선수가 해협 횡단에 도전한 곳이다.

20세기 들어 유명세를 탄 것은 로댕의 대표작 '칼레의 시민'때문이다. 칼레시청 앞에 있는 이 청동조각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상징으로, 도시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1347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를 점령한 뒤 지도자 6명을 넘긴다면 나머지 시민들은 살려주겠다는 명령을 전달했다. 부자, 시장, 법률가 등 귀족 6명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놓기 위해 출두했으나 영국 왕비의 만류로 살아남는다.

칼레시의 청탁을 받은 로댕은 이 일화에 감동해 고심 끝에 1889년 작품을 완성했다. 정작, 작품을 본 칼레 시민들은 분개했다. 영웅의 늠름함은 어디에도 없고, 6명의 인물이 죽음의 공포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처절하게 고뇌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댕은 '참된 영웅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처음에 냉대를 받아 한적한 공원에 있다가 1924년 시청 앞으로 옮겨왔다.

며칠 전 칼레가 뉴스의 전면에 등장했다. 프랑스 경찰이 불도저를 앞세워 칼레 난민촌을 강제 철거했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이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칼레가 669년 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시험받았다면 이번에는 똘레랑스(tolerance·타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로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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