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이 거울 속의 눈썹 그리네
이옥봉
온다고 하시던 임 왜 이리 늦나?
매화꽃도 어느덧 지려 하는데…
까치가 깍깍 우니 이제 오실까
부질없이 거울 속의 눈썹 그리네.
有約來何晩(유약래하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원제: [규정(閨情)]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인 이옥봉(李玉峰)이 지은 작품이다. 그녀는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이봉(李逢)의 서녀로 태어났다. 서녀라는 신분적 조건 때문에 첩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첩이 되더라도 그 남편만은 탁월한 사람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딸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버지가 그에 상응하는 인물을 찾던 중, 진사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했던 조원(趙瑗)이란 사람이 눈에 들었다.
조원을 찾아가서 자신의 딸을 첩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조원은 그 청을 일언지하에 딱 거절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봉은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조원의 장인인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서 제발 사위를 좀 설득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사위가 첩을 거두어들이도록 장인에게 설득을 요청하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물론 말이 될 리가 없다. 요즈음의 기준으로 본다면 뺨을 열 번 맞고도 남을 소리다. 그러나 양반이 첩을 들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던 그 당시로서는 말이 되지 않을 것도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조원의 장인은 "사내대장부가 쩨쩨하게 뭘 그런 일에 망설이느냐"며 이옥봉을 거두어들이도록 명령을 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이옥봉은 조원의 첩이 되어 한동안이나마 깨가 쏟아지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가 타는 기다림이 없었던 첩이 어디 있으랴. 그녀는 지금 떠나간 임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정황으로 보아 뜰에 있는 매화가 필 때쯤이면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던 임이다. 벌써 그 매화가 지려고 하는데도 떠난 임이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애간장이 죄다 찢어질 지경이다. 그때다. 매화 가지에서 홀연 까치가 목청이 터지도록 깍깍 울어댄다. 체념에 젖어 있던 여인의 얼굴에 아연 생기가 감도는 순간이다. 그녀는 서둘러 거울 속에 있는 눈썹을 그린다. 돌아오는 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까치가 깍깍 운다고 해서, 거울 속의 눈썹을 그린다고 해서 길 떠난 임이 정말 돌아오실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왜 그러냐고? 거울 속의 눈썹을 '부질없이' 그리고 있으니까. 못 믿을 까치에게 속았던 것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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