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 안내면 내려" 몰인정한 대구 시내버스

카드 잔액 부족 지적장애 학생 빗속으로 내몰아

4일 오후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박모(52) 씨는 정말 기가 차는 장면을 목격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날 오후 3시 30분쯤 대구 동구청 앞에서 이 버스를 탄 지적장애를 가진 듯 보이는 한 학생을 버스기사가 '요금이 없다'는 이유로 내리게 하는 것을 보고는 분통이 터질 뻔한 것. 행동이 둔하고 어눌해 보이는 이 학생은 버스에 오른 뒤 곧바로 좌석에 앉았고, 곧이어 버스기사가 "학생, 버스비를 왜 안 내냐"고 묻자 뒤늦게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댔다. 하지만 충전 잔액이 부족해 결제되지 않자 버스기사는 이 학생에게 내리라며 소리쳤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버스에서 내린 학생을 보다 못한 승객 3, 4명이 문을 닫고 출발하는 버스기사에게 "우리가 버스요금 줄 테니 차를 세우라"며 항의했고, 그제야 버스기사는 문을 열고 학생을 태워줬다. 박 씨는 "만약 그 학생이 버스를 타지 못했다면 지적장애도 있는데 비를 맞으면서 얼마나 서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며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위해 매년 시민의 혈세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게 준공영제라면 당장 때려치우는 게 낫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지적장애가 있는 학생이 부족한 교통카드 금액 때문에 버스에서 비 오는 거리로 내쳐져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있던 승객들이 보다 못해 버스를 세우고 대신 버스요금을 내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꽉 막힌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특히 버스업체는 물론 대구시마저 '돈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식의 태도를 보여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시내버스 업계는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버스기사들에게 과태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누구라 하더라도 요금이 없으면 태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무임승차를 한 사람은 요금의 20배, 버스회사는 과징금 60만원, 버스기사는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

해당 버스업체 관계자는 "운전기사들에게 예외를 두고 무임승차를 시켜야 할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교육하고 있지만 과태료 때문인지 그렇게 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며 "앞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기사들 교육을 더 강화하겠다"고 했다.

대구시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내버스 요금과 관련해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벌금의 경우 신고가 접수된 경우 사실 확인을 통해 부과하는데, 현재까지 벌금 처벌을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는 것. 시 관계자는 "운전기사가 유연하게 대처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런 상황을 대처할 매뉴얼 같은 것은 따로 없다"며 "교육도 각 버스회사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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