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생님이 들어주는 한 단락 인문학]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창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보고 인간을 바라보았고, 다시 인간을 한 번 보고 돼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조지오웰의 중에서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책의 마지막 몇 문장이고, 책을 덮지 못하게 떠오른 질문이다. 이 물음이 나를 맴돌 때, 오래전에 유명했던 광고 카피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말과 이 광고에 얽힌 이야기인 학교 시험문제에서 침대를 가구로 고르지 않은 해프닝이 생각났다.

나폴레옹, 복서, 스노볼 등의 인물들도 인상적이지만, 내게 가장 걸리는 인물은 스퀄러이다. 선전선동의 대가이다. 과장, 왜곡 등의 방법으로 무엇이든 합리화해 버린다. 나중에는 양들을 시켜서 여론 조작이랄까 칠계명 조작까지 한다. 나치 독일의 괴벨스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복서(말)로 대표되는 무식(?)한 민중이라서 속이기 쉬워서일까? 왜 동물들이 주인공일까?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가 생각(성찰)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가 기준이 되어서가 아닐까? 인간이 동물 같고, 동물이 인간 같은 이 괴상(?)한 결말은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노예 같은 삶, 아니 가축(동물) 같은 삶을 사는 인간들을 풍자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거의 0%에 가까운데, 전 세대의 문해력은 중간 정도이고, 나이를 먹을수록 낮아져서 많은 나라와 비교하면 뒤에서 3등 안에 든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요한계시록 13장에도 보면 두 종류의 짐승이 나온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세상 권력자를 상징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거짓 선지자나 지식인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적용하자면 언론인이나 매스미디어 등 정보를 접하고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자이기도 하다. 이 13장에 유명한 '육백육십육'이 나오는데 이것은 노예의 표시이다. 나폴레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라면, 스퀄러 같은 인물이 바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천시하는 돼지 같은 짐승에게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다. 지배를 당할 뿐만 아니라 스퀄러 같은 짐승의 영향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돼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을 쫓아내는 혁명이 일어나고, 가장 먼저 돼지들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 우유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센의 부모님이 음식을 탐하다 돼지로 변한다. 스퀄러 같은 인물의 선전선동에 속는 이유가 무지하거나 무식해서도 그렇겠지만, 한편으로는 탐욕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돼지의 모습은 아니지만, 다른 동물들 속에 있던 것도 여러 모양의 욕심이라 생각한다. 사기를 잘 당하는 이유도 인간들 안에 과도한 욕심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닌가? 양들도 건초 얼마에 스퀄러가 시키는 대로 한다. 한때, '부자 되세요'라는 신용카드 회사의 카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도 있지 않은가? 복서처럼 '무조건 내가 더 열심히 일하면 돼'가 아닌,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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