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를 보면 우리의 통념이 의외로 편협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대담에 나온 그의 첫 모습은 '수줍음' 그 자체였다. 가방을 가슴에 폭 파묻고, 겸손이 지나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서울대 의대 출신, 의과대학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 등 어느 것에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검사 아버지, 약사 어머니를 둔 '잘나가는 집안 출신'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외모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우리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달라졌다.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가식 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대담 분위기가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이게 서민 교수의 매력이었다. 글쓰기 책으로 유명 작가가 되고, 생소한 기생충을 가까운 친구처럼 만들어낸 이웃집 아저씨가 서 교수였다. 수십만 명의 독자를 고정 팬으로 거느리고 있는 이유가 확실히 있었다.
김병준: 이름을 보면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란 뜻의 서민과 같다. 사람들이 이름 가지고 장난을 많이 쳤을 것 같다.
서민: 눈 작다고 놀리느라 이름이 빛을 못 본 것 같다(같이 웃음). 어쨌든 부모님이 작명소에서, 그것도 유명한 사람한테 돈 주고 지은 이름이다.
김병준: 스스로 이름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나?
서민: 어릴 때 좀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기억되기 쉽고 사람들을 편하게 한다. 작년에 라는 책을 썼는데, 글을 잘 못 쓰는 일반 사람도 글을 잘 쓸 수 있게 해 주는 책인가 하고 산 사람들도 있다. 그런 덕도 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좋은 옷을 입어도 여전히 없어 보인다(웃음). 노숙자 같다고도 한다.
김병준: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계신가?
서민: 넥슨 사장이 같은 이름이다. 검색을 해 보면 그분이 항상 먼저 나왔다. 그래서 언젠가 저분을 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병준: 지금은 달라졌을 것 같다.
서민: 글을 쓰고 방송을 타고 하니까 역전이 됐다(같이 웃음).
김병준: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서민: 의과대학 시절, 외모 때문에 자존감이 낮았다. 어머니 말씀이 의대만 가면 여자가 줄을 선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현실은 어머니 말씀보다 더 냉혹했다. 소개팅 나가면 여학생이 갑자기 바쁜 일이 있다고 일어서거나 화를 내며 일어서곤 했다. 자존감이 더 떨어질 판이었는데, 이걸 높이는 수단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김병준: 글로 뭘 어떻게 했나?
서민: 글을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글로 구애를 했다. 어떤 여학생에게 첫 연애편지를 썼는데 60통 정도 쓰니까 넘어오더라. 얼굴이 아니라 글을 먼저 보내니 되는구나. 마치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 것 같았다.
김병준: 웃을 일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온다. 죄송하다. 그래서 이후 여학생들을 잘 사귀게 되었나?
서민: 여자에게 쓰는 글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자꾸 쓰다 보면 썼던 걸 또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효력이 떨어지고….
김병준: 어쨌든 그 이후 글을 계속 쓰신 것 같다. 주로 어떤 글을 썼나?
서민: 의과대학 동아리 회지 등에 썼는데 주로 남을 웃기기 위한 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었다. 남을 즐겁게 하는 글이라 해도 정보가 80, 유머가 20,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런 걸 몰랐다. 유머로 80을 채웠는데 그것도 침 흘리고 비듬 털고 하는 따위의 유치한 내용들이었다.
김병준: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계속 썼을 것 아닌가?
서민: 의대생들이 글을 잘 못 쓴다. 또 생활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이런 글로도 재미와 위안을 느끼는 마니아들이 많았다. 심지어 '천재작가'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자존감이 낮은 판에 그런 이야기 어떻게 들렸겠나. 기분이 정말 좋았다.
김병준: '천재'가 아닌 줄 언제 알았나?
서민: '천재'라는 말에 꼬여 대학시절 쓴 글들을 고치고 묶어 를 내놓았다. 30살 때였는데 '천재작가'의 등장, 그래서 확 뜰 줄 알았다. 최소한 10만 권쯤 팔리면서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영 아니었다. 반응이 너무 좋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까지 이런 걸 돈 주고 사 봐야 하느냐 욕을 했다. 그때 알았다. 아, 이 글들이 다 쓰레기구나.
김병준: 몹시 아팠겠다.
서민: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책이었다. 절판시키고 남은 것을 모두 수거했다. 지금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겁난다. "너의 지우고 싶은 과거를 알고 있다"며 협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2만원에 사겠다고 제안을 한다.
김병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도 계속 쓰고 있지 않은가. 특히 최근의 글들은 풍자와 해학, 그리고 반전이 넘친다. 자신감이 없으면 쓰지 못할 글들이다.
서민: 앞서 말했듯이 글 외에 자존감을 키울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훈련'을 했다. '천재'가 아니니 '훈련'으로 실력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김병준: '지옥훈련?'
서민: 일단 절필을 한 후 보수언론 진보언론 할 것 없이 신문 사설과 칼럼들을 스크랩해 줄을 쳐가면서 분석하고 공부했다. 당시는 글쓰기에 대한 기본서도 별로 없었다. 사설이나 칼럼을 많이 보면 좋다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 내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봤다. '지옥훈련'이라 할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지독하게 했다.
김병준: 남이 잘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가는 건 더욱 어렵다.
서민: 공부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더 급했다. 빨리 실력이 늘고, 그래서 좋은 글을 써서 좀 떠야 되겠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10년 정도, 마치 암흑 속에 사는 것 같았다.
김병준: 결국 성공하셨다. 그야말로 떴다. 인기도 높고 팬도 많다. 기고 요청이 많을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이 쓰고 있나?
서민: 월 4, 5군데 기고하고 있다. 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한때 한 달에 15군데 기고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거절을 잘 못한다. 어릴 적부터 친구가 별로 없었던 탓인지, 거절하면 상대가 영영 도망가 버릴 것 같아서이다.
김병준: 스스로의 글에 대해 지금은 얼마나 만족하나?
서민: 칼럼의 경우 10번 쓰면 3번 정도 만족한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이만큼 사랑받고 있는 것 자체가 좋다. 크게 만족하고 있다.
김병준: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다. 대중을 향해 글을 쓸 때 대중의 생각을 바꾸어 보겠다고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중의 정서와 감정을 그대로 존중하고 그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같은 감정과 정서를 나누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어느 쪽이라 생각하나?
서민: 후자이다. 굳이 대안을 제시하거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때로 내 글에서 그런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진영논리로 나누어져 있고, 이게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상황일 바에야 나와 같은 편에 있는, 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글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람은 많이 못 보았다.
김병준: 솔직하게 대답해 줘서 고맙다. 또 하나,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세계관이나 국가관 같은 것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기본적으로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서민: 사람들이 깨어 있으면 좋겠다. 찬성이나 반대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고, 또 제대로 알고 말하고 행동하면 좋겠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말한다고 바로 찬성하고, 또 바로 반대하고 해서야 되겠나. 이를테면 사드 문제나 노동개혁 문제 등도 얼마나 알고 찬성하는지 모르겠다.
김병준: 어느 나라 없이 비슷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특히 심하다.
서민: 사실 어느 순간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무비판적인 지지와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1인 1표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지 회의가 든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이기게 되면 '위대한 국민의 선택'이라 하는데 그게 정말 그런 건가? 오히려 철인(哲人)정치가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한다.
김병준: 글을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기생충을 연구하는 의과대학 교수이다. 대중적 글쓰기와 연구자, 이 두 가지 일이 서로 부딪치지 않나? 외도를 지나치게 한다는 동료 교수들의 비판도 있을 수 있고….
서민: 기본적으로 기생충학자이자 연구자이다. 좋은 글을 쓴다고 칭찬받는 것보다 좋은 학술지에 좋은 논문 게재하는 것을 열 배 백 배 더 중시한다. 실제로 매년 적지 않은 논문을 내고 있다. 다만 세상이 잘 돌아가야 연구도 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바로 만들자는 뜻의 글쓰기도 중요하다. 또 기생충학자의 글이 뜨면 기생충학에 대한 일반시민의 관심도 높아진다. 두 가지 일이 부딪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병준: 기생충학은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분야이다. 어떻게 전공하게 되었나?
서민: 대학시절 기생충에 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걸 보신 이 분야 교수님이 이 친구를 꾀어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밥을 사주시는데 감격하고 하다가 결국 넘어갔다. 전공으로 정하고 나니까 밥도 안 사 주셨지만…. 하지만 재미있다. 개업의사는 감기면 감기, 매일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을 보지만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연구한다. 그런 게 좋다.
김병준: 기생충 연구면 기생충 박멸 같은 걸 연구하는 것인가?
서민: 아니다. 기생충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기생충은 인체가 곧 집인 만큼 인체를 해치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간다. 알을 낳으면 밖으로 내 보내지 안에서 부화시켜 개체 수를 늘리는 짓도 하지 않는다. 영양을 빼앗아 간다고 하지만 그 정도 영양은 줘도 될 만큼 우리는 잘 먹고 있다.
김병준: 없애는 걸 연구하지 않으면 뭘 연구하는 건가?
서민: 다양한 연구를 한다. 이를테면 기생충으로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연구를 하기도 한다.
김병준: 기생충으로 치료를?
서민: 인간의 면역계는 무엇인가에 의해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이걸 기생충이 해 왔다. 기생충이 없어지니까 면역계가 예민해지고, 그래서 이 면역계가 자기를 공격하게 된다. 기생충을 박멸한 나라에서 알레르기가 늘어나는 이유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기생충 알을 몸속에 넣어 치료할 수 있다.
김병준: 재미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돈은 잘 벌지 못할 것 같다.
서민: 그런대로 먹고산다. 욕심이 크면 아무리 벌어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중요한 것은 분모, 즉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타면 어떠냐?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은 글 쓴다.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하고…. 글 읽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만하면 다 가진 것 아니냐?
김병준: 결례지만 차는 뭘 타고 다니시나?
서민: 2000년산 EF쏘나타를 타고 다닌다.
김병준: (웃음) 정말 1980년대 학번의 의사치고는 좀 그렇다.
서민: 나는 이대로 좋은데, 연구를 이어 갈 제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아 문제다.
김병준: 일단 밥을 열심히 사보는 수밖에 없겠다. 아무튼 오늘 감사하다. 열심히 연구하고, 지옥훈련까지 해 가며 좋은 글 쓰고, 그래서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또 오래된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다 가졌다' 하고…. 팬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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