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배려의 관계는 감격을 동반한다

경북고·서울대 졸업. 전 뉴욕부총영사. 전 태국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경북고·서울대 졸업. 전 뉴욕부총영사. 전 태국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기말고사 치르고 교실에 온 중국 학생

"강의 잘 들었고 고맙다" 인사에 감격

中國의 안보리 대북제재 적극 참여

한국을 배려했나, 자국의 전략인가

필자는 수업시간에 중국,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덩치 큰 중국이 통 큰 지도자를 만나 큰 정치를 하는 게 너무 부러워서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보란 듯이 쏘아대는 현실 속에서 부대끼는 한반도의 오늘을 생각하면 마냥 부러워할 수만은 없음도 잘 안다. 국가관계에서 배려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선 배려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대한 마땅한 배려가 되돌아오지 않을 때 종종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배려가 있을 때는 감격을 동반하게 된다. 살다 보면 아름다운 배려의 장면이 없지 않음을 느낀다.

필자 강의에는 3명의 중국 학생이 있었다. 사실 그들의 한국어 수준으로는 뭔 말을 떠들어대는지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을 성싶다. 그러나 그들의 조국, 중국에 대해서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는 느낌 정도는 확실하게 전달받을 것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러 보면 단번에 안다. 얼마나 강의를 이해하는지 말이다. 한국어가 그리 강하지 않으니 수업시간에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애쓰지만 좀처럼 나서질 않는다. 행여 입 닫고 있는 동료 학생들 앞에서 나대다가 실수할까 저어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학생들이었다.

기말고사를 치르는 시간이었다. 시험 답안지만 제출하면 바로 방학이요, 강단 위의 교수와는 영영 바이바이 하는 순간이다. 답안지만 뚱하게 던지듯 내고 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열강 감사합니다" "공부 많이 못해 답 잘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 짧은 어구를 남기는 학생도 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를 정리하는데, 중국 학생들이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당장 "아하! 시험을 잘 이해 못 해 잘못 적었으니 잘 봐 달라"고 부탁하려는 구나 했다. 그런데 웬걸! 자기들은 4학년이라 이번 학기로 졸업하며 중국으로 돌아간단다. 그간 강의를 잘 들었으며 많이 고맙다는 게 아닌가! 순간 생각지도 않은 깨달음의 전율이 왔다. 헐렁한 차림새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었는데, 이런 인사차림을 하다니 어이 고맙지 않으리까. 감격이었다.

또 시아버님이 계셨단다. 일찌감치 홀로 되셔서도 옆길 한번 보지 않으셨고, 재산도 넉넉하여 아들 내외, 손자손녀의 살림살이뿐 아니라 교육까지 풍요롭게 다 책임지는, 지극히 부럽고 완벽한 가장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에 실려 요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단다. 시아버님이 어디에다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게다. 아들과 며느리가 큰일 났다며 바짝 긴장할 것은 불문가지. 집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금요일이면 낚시 가신다고, 등산 가신다고 하며 도시락을 넉넉히 싸달라고 하셨다. 그리고선 통째 주말 동안 집을 비우시며 월요일이나 돼서야 돌아오시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쩍었다. 그래 뒤를 밟아 알아봤다. 정말 시외에 참한 한옥 한 채 얻어 딴살림을 차려놓으신 게 아닌가. 그것도 벌써 10여 년 전부터 말이다. "아이고, 아버님 어찌 그리 하십니까? 진즉 말씀하시지" 하며 엎어지듯 여쭈니, "오해는 말거라. 딴 여자를 보려고 그런 게 아니다. 너희들 홀시아버지 모시는 게 너무 고단코 팍팍해 보여 몸 마음 어려울까 해서, 주말이라도 너희들끼리 편하게 지내라고 그런 거니 너무 섭섭게는 생각 말라"는 고마운 말씀이 아니신가!

세월이 고된지, 사람이 못생겼는지,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려서 죽이기도 하고, 창밖에 던져 죽이기도 하는 일들이 뉴스를 탄다. 어떤 이는 감옥을 살며, 퇴소하는 동료들에게 "올바르게 살아라"는 말을 못했단다. 바깥세상이 얼마나 엄할지 잘 알기에 입에 발린 공자 말씀을 하지 못했다는 게다. 그렇다고 "생존을 위해 막살아라"는 말은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한 배려의 마음은 읽히지 않는가?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사 이래 가장 강경한 유엔안보리 제재안의 결정과정에서, 중국이 그나마 나름대로 적극적 긍정적으로 참여한 것은 우리에 대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더 긴 안목의 전략이었을까? 우리가 잘 살펴야 할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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