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록 뮤지션 문희준

가수 문희준을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가 리더였던 HOT의 인기가 절정에 있던 15년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기분 좋았겠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 않다. 방송에서 보니 '전사의 후예'를 부르며 뿜어내던 아우라는 없어졌지만 제법 살집도 생겨서 귀여운 삼촌 같은 이미지다. 지금은 호감 연예인이지만 그는 안티팬이 많은 가수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거기에는 문희준이 록 뮤지션을 자처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가 음악적으로 어떤지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사실 비난의 대부분은 실력과는 무관하게 단지 그가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에서 기인했다. 인디밴드 활동을 하며 어렵게 음악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문희준이 록 음반을 내고, 록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록 음악 마니아들은 문희준을 '록을 모독한 자'로 여겼다. 그들이 보기에 아이돌 가수는 아티스트가 아닌 그저 기획사가 만들어 준 상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문희준은 록 음악을 하지 않는다. 안티팬들의 비난 속에서 아이돌 가수는 록 뮤지션이 되려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타로부터 20피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스타로부터 20피트 뒤에서 노래하는 코러스 싱어들이 20피트 앞으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록하고 있다. 스티비 원더의 백 보컬, 마이클 잭슨의 코러스 싱어였던 이들도 모두 스타가 꿈이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일단 경제적 이유에서 이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떤 스타의 코러스 싱어라는 '이미지'에 갇혀 버리게 되고, 스타가 되는 길은 영영 막혀 버리고 만다. 그것은 주디스 힐처럼 정말 실력 있는 가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마이클 잭슨의 코러스 싱어였고, 마이클 잭슨이 죽은 후 가수로 데뷔했지만 결국 다시 코러스 싱어로 서야 했다. 아이돌 가수와 록 뮤지션 사이의 거리는 코러스 싱어와 스타 사이의 20피트 거리보다 더 멀까, 가까울까?

기획사로부터 철저하게 조련된 아이돌 가수가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야 하는 록 뮤지션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록 뮤지션이 되려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코러스 싱어는 코러스 싱어만 해야 하고, 아이돌 가수는 아이돌 가수로서만 노래해야 한다는 발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건 버스에서 백인이 앉는 자리에는 흑인은 앉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인종주의적 사고와는 얼마나 다른 걸까?

군 복무 시절 고참들이 나더러 문희준 닮았다고 하는 소리가 참 듣기 싫었는데, 지금은 인정하는 쪽이다. 생긴 것도 닮았지만, 나 역시 '여기'에 있으면서도 20피트 앞 '저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문희준이 다시 록 음악을 하면 좋겠다. 발칙한 꿈을 꾸는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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