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민임대아파트 불법 재임대 판쳐

달성 택지지구 시세차익 노림수…투기꾼 몰려 과수요 더 부추겨

"좋은 집이 나왔는데…."

결혼 2년 차 김모(33) 씨는 얼마 전 대구 달성군 한 부동산사무실에 들렀다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지난해 입주한 85㎡ 새 아파트를 보증금 500만원, 월세 35만원에 주겠다는 것.

당장 목돈이 들지 않는 데다 월세도 원룸보다 싸서 주저 없이 계약해 버렸다. 김 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국민임대아파트를 재임대한 것이었다. 월세도 싸고 보증금 부담도 적지만 불법이라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 임대아파트의 불법 전대(轉貸'빌린 것을 다시 빌려주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요자-공급자' 간 이해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임차인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처럼 장기계약을 할 필요 없이 월별로 쪼개서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이사가 가능하고, 임대인은 일정 임대 기간이 흐르고 나면 분양 1순위를 받아 해당 아파트를 되팔 때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지난해 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전국 임대주택 불법 전대는 2010년 48건, 2011년 45건, 2012년 35건, 2013년 70건으로 꾸준히 발생했고, 2014년에는 114건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 수년간 대구의 아파트 시장은 매매가와 전세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전세가 자취를 감췄고,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세력들이 임대주택의 과수요를 발생시켜 불법 전대가 더욱 판치고 있다.

7일 오후 찾은 달성군 택지지구 내 한 부동산사무실에는 백지에다 아파트 평형과 보증금'임대료만 써 붙인 불법 전대 홍보지가 붙어 있었다. 한 공인중개사는 "달성에서만 은밀하게 거래되는 임대주택의 불법 전대 물량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단속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나 LH가 불법 임대 제보를 받더라도 거주자 협조가 없을 때는 영장을 갖춰야 하는 등 사실 확인이 어렵다. 제보도 일 년에 한두 건에 지나지 않는다. 주거 약자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정작 투기꾼들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순윤 법무부 주택임대차위원은 "한 해 전국적으로 110여 건이란 불법 임대 단속 실적은 같은 기간 수십만 가구의 임대주택이 공급되는 점에 비추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사전 단속, 예고 없는 실입주자 확인 상시화 등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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