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한국인의 짬뽕, 일본인의 짬뽕

뼈 있는 우스개가 있다.

한국의 아버지들이 밤잠을 아껴가며 짬뽕 장사를 하는 것은 자식만큼은 짬뽕 파는 일을 시키지 않으려는 바람 때문이고, 일본의 아버지들이 열심히 짬뽕을 만들고 파는 것은 자식에게 더 나은 짬뽕 기술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다. 일본의 아버지는 '짬봉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고, 한국의 아버지는 자식이 짬뽕집 주인이 아니라 판'검사나 의사, 교수가 되어야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광종 때부터 조선말까지 과거제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는 벼슬자리에 오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과거시험에 매달렸고, 급제가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됐다.

'오자등과'(五子登科)라고 하여 아들을 다섯쯤 낳고, 그 자식들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큰 복으로 여겼다. 그래서 여성들은 뒷면에 '오자등과' 글씨가 새겨진 청동거울이나 수저 혹은 다른 공예품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나이 50이 넘도록 과거 공부를 하느라 골방에 틀어박혀 일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다. 본인의 인생도 가족의 삶도 피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치 지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한 뒤, 신분 이동을 금지해버렸다. 왕실에서 발생한 '오닌의 난'을 시작으로 100년 이상 지속됐던 전쟁과 하극상이 신분 상승 욕구 때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사무라이들을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묶어둠으로써 생계를 주군에게 의지하게 하고,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있었다.

신분 이동이 금지되자 사무라이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는 사무라이가 되고, 상인의 자식은 상인, 농민의 자식은 농민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오랜 세월 체화된 한국과 일본의 다른 문화는 오늘날까지 국민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

제도 자체만 놓고 보면 신분이 고정된 사회보다 신분 이동이 가능한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그러나 두 제도 중 어느 제도가 개인과 공동체에 더 유익했는지 묻는다면 무 자르듯 답하기 어렵다.

과거제도를 통해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조선에서 '성공'은 과거 급제뿐이었다. 선비들은 공맹 외에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심지어 천하게 여겨 도외시했다.

신분 이동이 불가능했던 일본 사람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지식과 기술 축적이 이루어졌다. 오직 과거 급제, 혹은 판'검사, 의사, 교수, 재벌이 되어야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전부이지만,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래 2015년까지 5개 영역에 총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이다. 2002년에는 중소기업 시마즈 제작소에 근무하는 엔지니어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회사 측은 그를 임원으로 승진시켜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다나카는 관리자가 아니라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고위 관리자가 되어야 '성공'이라고 인식하는 우리와 다른 태도다.

일본에는 라멘 브랜드가 아주 많다. 대를 이어오며 자기 집안만의 고유한 라멘 맛을 계승 발전시켜 온 덕분이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자식이 아버지의 라멘가게, 우동가게를 물려받아 사업하는 경우도 많다.

자식이 판'검사나 의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짬뽕을 만들고 파는 아버지의 삶은 훌륭하다. 그러나 자식이 우리 집안만의 독특하고 맛있는 짬뽕을 개발하고 만들어 나가기를 소망하는 삶 또한 훌륭하다. 의사나 판'검사의 일도 보람 있지만, 나만의 짬뽕을 만드는 일 역시 보람 있다. 최고로 맛있는 '짬뽕'은 그런 과정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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