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미한 삶에도 새바람이<1>-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우수상

삽화: 이영철 화가
삽화: 이영철 화가

외도(外道)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그것은 안 하던 짓을 엉뚱하게 하면서 새롭기 때문이다. 외도라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사랑의 외도가 아닌가 하고 귀가 솔깃하다.

그러나 가던 길을 바꾸는 것은 다 외도이니 그 종류가 다양하다. 어느 외도든 새 길이기에 더욱 호기심을 유발하며 관심을 끈다. 이 세상에 남자라면 절세가인이 5월 신록 속에 호젓한 계곡이나 호반을 산책하자고 하면 뿌리칠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것은 여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리라. 인간은 누구나 다 감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외도가 아니라도 외도는 남몰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만큼 은밀하고 긴장감이 돈다. 가던 길이 아니니 새로운 길이라 더 조심스러워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사람이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답답할 때도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매일 먹으면 싫증이 난다. 사람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이 따라주지 않고 새로운 길은 낯설기에 길을 잘못 들까 하여 함부로 외도하기란 어렵다.

나는 젊었을 때 가는 곳마다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사는 데 급급하여 외도는 한 번도 못 해 보았다. 노래 부르는 곳에 가면 기타 치면서 노래를 잘 부르고 싶고, 춤추는 데 가면 절세가인(絶世佳人)의 섬섬옥수(纖纖玉手) 잡고 춤을 추고 싶었다. 스키 타는 곳에 가면 언제나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기차 타고 떠난 애인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스키를 빌려 타고 뒤쫓아 가서 알프스 산을 넘어서 가고 있는 기차 위에 날아올랐다. 애인을 만나 다시 사랑을 하는 영화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의 멋진 명장면을 상상하면서 스키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외도를 하지 못했다.

퇴직하고 환갑, 진갑 다 지날 때 놓치고 청춘도 사라진 후 어릴 때 짝사랑했던 애인을 못 잊고 만나 뒷북치면서 외도한 적이 있다.

가까이 따라가면 피해가기만 하던 행운이 내게도 왔다. 만시지탄(晩時之歎) 욕심 없이 만나 회포(懷抱)는 풀었으나 탄로가 났다. 은밀하게 극비로 만나 잘 이루어진 외도가 그분으로부터 큰 선물이 택배로 연속 오는 바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1차 선물은 발신지와 이름도 없이 받을 사람 주소와 성명만 써서 보냈다.

무슨 귀한 선물이기에 포장이 화려하고 야무지다. 내겐 이런 선물을 보낼 사람이 없는데 가슴이 방망이질한다. 무슨 선물이기에 이렇게까지 포장을 했을까? 겉포장을 벗기니 예쁜 보자기로 싼 포장상자가 또 있었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까? 더욱 궁금했다. 보자기를 풀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는데 시간은 초를 다투며 흐른다. 내 집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를 노려보며 "어서 진실을 밝혀라" 하는 기세로 나를 압박했다. 다급하니 이판사판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면서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심하고 결국 내 입으로 녹용까지 진실을 실토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이젠 아내의 처분만 남았다.

나도 아내도 긴장하며 포장을 열었다. 종이상자 안에 하얀 모조지를 깔고 비닐로 싼 내용물은 피가 굳지 않은 녹용 네 제였다. 금방 잡은 듯하다. 안에는 편지 한 통, 내용에 두 제는 재영 것, 두 제는 사모님 것이라 적혀 있을 뿐이다.

나도 집사람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보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 다녀온 직후 곧 선물이 도착했기에 집사람은 나를 의심하는 듯 뚫어지게 노려보며 "웬 선물이냐" 하고 따질 기세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당하니 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시간은 초를 다툰다. 위급하면 통한다더니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 고등학교 친구가 서울 근교에서 사슴 농장을 하는데 그 친구가 내게 녹용 네 제를 선물로 보내준다고 하기에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10만원 주고 왔다고 둘러댔다.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꾸며 집사람을 속여 아슬아슬하게 잘 넘겼다. 그제야 아내도 안심한 듯 즐거운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평생 보약이라고는 사물탕 한 제도 먹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촉촉이 젖었다. 거짓말은 참 못할 짓이다. 그러나 누가 녹용을 보냈을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보낼 리도 없으니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이번 서울 갔을 때 길동무인 짝사랑 그녀와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둘이 노래를 부르다가 그녀는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남자가 뭐 이러냐? 내 남편은 보약이며 음식을 잘 챙겨주었더니 돼지 같다"고 한다. "나는 일제치하에 났는데 내 어머니가 젖이 부족하여 젖배를 골아서 뼈가 여자 같다"고 하고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 일이 있었던 후 보약이 왔기에 길동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르랴? 그녀한테서 온 것이었다.

녹용도 다 먹고 이젠 안심하고 있었는데 2차 선물 택배가 또 왔다. 포장을 뜯으니 홍삼 네 제였다. 이 홍삼이 녹용보다 비싸단다.

편지에는 전과 똑같은 내용이다. 이번에도 예고 없이 기습공격을 연속 받고 보니 아무리 궁리해 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는데 시간은 초를 다투며 흐른다.

집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를 노려보며 "어서 진실을 밝혀라" 하는 기세로 압박했다. 다급하니 이판사판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면서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심하고 결국 내 입으로 녹용까지 진실을 실토했다. 결과야 어찌 되었건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이젠 아내의 처분만 남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