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또 한 번의 편집후기를 썼다. 원고 마감과 교정을 마치고 또 한 권의 잡지책이 인쇄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책이 발간되고 나면 얼마 동안 그 책을 펴지 못하고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혹시 그 안에 내가 교정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잘못된 것들이 있을까 두려워서다. 늘 책을 내고 난 후련함 뒤의 허전함은 연극이 끝난 후 불 꺼진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편집후기는 잡지 등의 편집을 마친 후, 편집인이 편집의 과정, 감상, 계획 등을 단편적으로 적은 글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대학시절 교지 편집실에서 수습부터 편집장을 거치며 3년간 6권의 책을 만들었던 나는 6번의 편집후기를 썼다. 학창 시절이었던 만큼 편집후기에는 책을 만들면서 겪었던 취재 과정의 어려움과 선후배에 대한 원망과 애정 등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나의 존재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개성 있는 후기를 쓰기 위해 기사 작성보다 더 많이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에서 편집후기는 사람 향기가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페이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를 알기 위해 책을 읽기도 전에 편집후기를 찾아 먼저 읽기도 한다.
편집후기는 책의 본문 원고를 다 마감하고 최종 교정을 할 때 쓰게 된다. 책의 구성과 편집 의도에 대한 설명을 앞부분에 적고 제일 끝 서너 줄은 개인적인 감정을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세련되게 함축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나'스러움을 잃지 않고 '나'다운 화룡점정의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편집후기를 쓰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졸업식처럼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는 끝맺음이자 또 다른 출발의 의식과 같은 것이다. 올봄, 은유와 비유, 함축의 화두와 같은 멋진 편집후기를 남기지는 못했다. 내 문장력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솔함이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면을 공백으로 남기고 말줄임표(……)로 편집후기를 대신한 많은 편집인의 마음을 이제 알 듯하다.
우리 삶은 초심을 생각해야 하고, 오늘이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해야 하며, 복잡한 감정과 무수한 말은 스스로의 정화 장치를 통해 걸러내야 하고, 단순하고 담백한 생활 태도와 침묵이 필요하다. 편집후기처럼……. 편집후기로 마침표를 찍고 또 다른 출발점에 선 나는 신입사원처럼 두렵기도 하고, 새내기 대학생이 된 듯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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