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한 자본주의 속 아이디어·끈기로 우뚝
홈쇼핑계 성공한 女 기업인 조이의 삶 그려
서민 주부 맡은 제니퍼 로렌스 연기 놀라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아메리칸 허슬'(2013)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4인의 할리우드 거물들이 뭉쳤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배우 로버트 드니로, 제니퍼 로렌스, 브래들리 쿠퍼의 조합은 이제껏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이번 영화 '조이'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성공한 여성 기업인 조이 망가노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한 코미디 드라마다. 많은 가족 구성원을 먹여살려야했던 가난한 가정주부 조이가 살림살이에서 얻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굴하지 않는 의지로 홈쇼핑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받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연출자가 데이비드 O. 러셀이라는 점을 생각하자. 그는 전작들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꼬집으며 미국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해왔다.
할 말은 하는 할리우드 엉뚱녀 제니퍼 로렌스와, 과거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시대를 써나갔던 1970년대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아이콘 로버트 드니로가 부유한 CEO의 성공 스토리를 진부하게 연기하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혼한 엄마와 전 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싱글맘 조이(제니퍼 로렌스)의 삶은 지긋지긋하다. 엄마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TV로 막장 드라마나 보고 있고, 백수가 된 전 남편은 갈 데가 없어 조이네 지하방에 얹혀산다. 이복언니는 사사건건 조이의 신경을 건드린다.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직장에서는 수시로 멸시를 당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조이가 어린 시절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가 이제 딸과 함께 살겠다며 막무가내로 들이닥친다.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아버지는 새로운 연애를 하겠다며, 죽은 남편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받은 또래의 이국적인 여인 트루디(이사벨라 로셀리니)와 만난다.
영화는 할머니(다이안 래드)의 시점으로 그녀가 아끼는 영특한 손녀 조이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할머니는 손녀가 언젠가는 꽃을 활짝 피우리라는 것을 대책 없이 믿는다. 가족 중 오직 한 사람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살아가고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유유자적한다.
영화 전반부는 조이의 악착스럽고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품이 넉넉한 조이는 불쌍하지만 가족들은 웃기고도 얄밉다. 그러나 조이의 처지는 실제 세계 어디에나 있는 여느 서민 여성의 처지와 다름없어서, 영화는 웃기고도 엉뚱한 판타지 코미디가 아니라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서민 코미디로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조이는 어느 날 트루디의 보트파티에 초대받았다가 깨진 와인잔을 치우면서 손대지 않고 짜는 밀대걸레를 발명한다. 그러나 그녀는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매번 좌절하고 만다. 그러다가 홈쇼핑 전문채널의 경영이사인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를 만나게 되고 기적적으로 방송 기회를 얻어 5만 개의 제품을 제작하지만, 방송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개의 제품도 팔지 못한 채 빚을 떠안고 파산 위기에 놓인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공격적으로 성공을 향해 도전하는 조이의 여정을 다룬다. 밀대걸레를 든 그녀는 남자들의 이너서클로 공고하게 다져진 사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게, 너는 안 된다고 경고했잖아" "집에서 가족 뒷바라지나 하세요"라는 굴욕적인 조언이 바로 현실이다.
깨져서 나락으로 떨어질 때 밀대걸레를 들고 다시 일어선 조이는 총을 든 고독한 서부극 총잡이의 변형이다. 그녀는 총 대신 밀대걸레를 들고서, 거친 황야가 아닌 야수의 정글 같은 자본주의 시장에 던져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처럼 아무것도 없이 아이디어를 들고 달려드는 주부들의 대모가 되기로 작정한다.
영화는 한 실존 여성의 성공이 주는 달콤함이나 경이로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무한대의 노력을 요구하는 냉혈한 자본주의 사회, 남녀차별과 계급차별을 밟고서 성장해온 사업가들의 세계를 날카롭게 묘사하며, 진짜 성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돈을 왕창 버는 것, 명예를 얻는 것,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가치'라는 점을 파고든다.
매번 그렇듯이 제니퍼 로렌스는 이번에도 놀랍다. 유명 배우로서의 페르소나를 버리고 서민 주부인 조이 캐릭터 그 자체에 몰두한다. 한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과 성격을 과장하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전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누군가의 성공담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인간다움으로 뛰어넘는 통쾌함을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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