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개봉 10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귀향'은 감독이 사비를 털고 부족한 재원을 시민 후원으로 채우면서 14년 만에 완성한 영화다. 애초에 상업적으로 기획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흥행 돌풍 자체가 또 다른 화제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귀향'은 조만간 '국민 영화'의 지위에 오를 것 같다.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은 왜 이 영화에 열광할까?
위안부 실화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긴장된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애초에 세련된 극영화를 기대하진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영화를 봤다. 신파조의 격렬한 감정 분출이 부담스러웠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을 현실은 더 했을 것이란 생각에 양해가 됐다. 어쨌거나, 나는 이 영화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얻었다. 지금까지 익히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하진 못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으로 올라오는 후원 시민 7만5천여 명의 명단을 보면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이 밀려왔다.
사실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늘 우리 곁을 풍문처럼 떠돌았다.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하라며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 전부이다. 시민들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20년 넘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렸지만 참여자는 소수였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로 20여 개국 60여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연대집회로 발전했지만, 이는 오로지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비롯한 소수 활동가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위안부 피해자를 자기의 문제로 껴안은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동정받아야 할 '그들'이 아니라 위로받아야 할 '우리'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제목이 귀향(歸鄕)이 아니라 귀향(鬼鄕)인 까닭은 종전 후 살아 돌아온 피해자뿐만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까지 껴안자는 뜻으로 읽힌다. 그건 위안부 피해자 전체를 정당한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는 권유일 터이다.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귀향'이 한국 시민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를 껴안는 새로운 전기가 될지, 껄끄러운 사회적 문제를 영화 관람이라는 의사행위로 흘려보내는 일회용 소비로 그칠지는 두고 봐야 안다. 관건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이 우리 소녀들을 집단 강간한 사건으로 해석하면 위안부 피해자는 또 다른 가부장적 민족주의 담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보면 일본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켜 민족주의 정서를 동원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수용은 어려워진다. 낡은 정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깊은 위로와 후원이 필요한 그들을 멸시와 냉대의 속마음으로 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에 대한 국가 간의 폭력과, 남성이 여성에 가하는 가부장적 폭력이 중첩된 문제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부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회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 시민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인정이 자리 잡아 집단적 힘을 발휘할 때, 가해당사자인 일본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도 앞당겨질 것이다.
남재일 경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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